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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옥_역사 인물과 인재 교육 『서초 이야기 · 2』 「효령대군」

검지 정숙자 2020. 2. 20. 01:43




    효령대군의 신주를 모신 청권사 

    효령대군 


    강기옥 /시인, 칼럼니스트



  효령대군(孝寧大君, 1396~1486)의 신주를 모신 사당을 청권사淸權祠라 부르는데 췅권사의 의미에는 아들이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은 효도와 동생을 사랑하는 양보, 그리고 우애의 정신이 숨어 있다.



  조선 시대의 왕족 중에 가장 오래 산 사람은 효령대군이다. 1496년에 태어나 1486까지 살았으니 91세의 천수를 누렸다. 조선의 왕은 평균 47세로 대부분 단명했는데 영조(英祖, 1694~1776)는 83세의 수를 누렸다. 그러나 만일 효령대군이 태종의 뒤를 이었다면 조선의 장수왕은 단연 효령대군이다.

  양녕대군의 행실이 아버지의 눈에 벗어나는 것을 본 효령대군은 자신이 세자의 자리에 오를 줄 알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자 양녕은 효령을 꾸짖어 꿈을 버리라고 일깨워주었다. 그 일은 『연려실기술』에 기록되어 있는데, 어느 날 양녕이 공부에 열중인 효령을 발로 걷어차며 '아버지의 뜻이 충녕에게 있음을 어찌 깨닫지 못하느냐'고 일갈한 내용이다. 이 말을 듣고 효령은 절로 올라가 하루 종일 북의 가죽이 늘어지도록 두들겼다. 섭섭함과 아쉬움을 달래는 뒷북치기였다. 그래서 뒷북치기의 전형인 '효령의 북'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 기록이 아니라도 효령이 차남, 충녕이 삼남이었으니 차기 세자는 당연히 자기 몫이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충녕을 지목하고 있다니 인간적으로 섭섭한 마음이 북받쳤으리라. 그래서 화풀이로 불을 쳐댔고 북을 치며 동생이 국정에 힘을 쏟을 수 있도록 궁궐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회암사와 원각사를 중건하고 명승들을 모아 불법을 강론하게 하는 등 불교에 열중했다.

  그런 중에 한강변에 정자를 짓고 책을 읽으며 소일하는데 태종이 아들의 근황이 궁금하여 정자를 찾았다. 그런데 태종이 정자의 아들을 찾아가는 날이면 꼭 비가 내렸다. 그래서 정자를 '희우정喜雨亭'이라 했다. 기쁘게 내리는 비, 백성에게 기쁨을 주는 비의 의미를 담아 희우정이라 한 이유는 태종 대에 비가 내리지 않아 백성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그러면 태종은 자신의 덕이 부족하다 하여 기우제를 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기 전에 태종은 세종에게 '내가 죽으면 옥황상제께 청하여 온 누리에 비를 내리게 하겠다.'며 숨을 거두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태종이 죽자 거짓말처럼 비가 내렸다. 그 후부터 음력 5월 10일에는 어김없이 비가 내렸는데 태종의 기일忌日에 내리는 이 비를 太宗雨태종우라 한다. 희우정이 지금은 망원정으로 바뀌었지만 한강 쪽 앞면에는 망원정, 마을 쪽 뒷면에는 희우정의 현액이 걸려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효령대군 묘는 방배 전철역 4번 출구에서 나오면 50m 거리에 있다. 조선 시대 왕실의 묘는 능, 세자나 세자빈, 왕의 생모인 후궁에 대해서는 원' 그 외 왕자나 공주의 묘는 일반인 무덤처럼 묘라 한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이 임금이었지만 반정으로 쫓겨난 죄인이기 때문에 능이라 하지 않고 묘라 한 것처럼, 장희빈도 중전에 올랐으나 폐서인으로 사약을 받고 죽었기에 대묘라 한다. 단 한때 중전이었다는 것에 예우하여 대묘라 했다.

  효령대군의 사당을 청권사라 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중국 주나라 때 태왕은 맏아들 태백, 둘째아들 우중을 두고 셋째 아들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 그러자 두 형제는 삭발하고 은거하며 아버지와 동생이 국사에 전념을 하도록 길을 비켜주었다. 훗날 공자는 이 미덕을 살려 장남 태백은 지극한 덕을 베풀었다. 하여 지덕知德, 차남 우중은 권력에 대하여 마음을 비웠다 하여 청권淸權이라 칭송한 데서 양녕의 사당을 지덕사, 효령의 사당을 청권사라 했다. 청권사의 의미에는 아들이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은 효도와 동생을 사랑하는 양보, 그리고 우애의 정신이 숨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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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기옥_역사 인물과 인재 교육 『서초 이야기 · 2』에서/ 2019. 12. 20. <한국문화원연합회> 펴냄

 * 강기옥/ 시인, 칼럼니스트. 시집 『그대가 있어 행복했네』등, 평론집 『시의 숲을 거닐다』『느림의 계단에서 읽는 시』, 인문교양서 『문화재로 포장된 역사』『국토견문록』, 칼럼집 『칼을 가는 남자』등, 한국문협문학유적탐사 연구위원장,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