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풀이 자란다/ 이성필

검지 정숙자 2019. 10. 31. 01:03

 

 

    풀이 자란다

 

    이성필

 

 

  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풀이 자란다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풀이 자란다

 

  내가 지나온 길에는 풀이 자란다

  누구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게 풀이 자란다

 

  내 발자국을 풀이 덮는다

  내 기침소리를 풀이 덮는다

 

  내가 지나간 길에는 풀이 자란다

  내가 지나온 자리에는 풀이 자란다

 

  나는 가고 가기만 할 뿐 무엇도 남지 않는다

  종종 새들이 울 뿐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내 슬픔을 풀이 덮는다

  내 사랑을 풀이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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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정신』2019-가을호 <신작시>에서

  * 이성필/ 경기도 출생, 2018년『리토피아』로 등단, 시집『한밤의 넌픽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