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가할루 붉은 전설/ 익명씨

검지 정숙자 2023. 10. 12. 02:57

 

    가할루 붉은 전설

 

     익명씨

 

 

  열대 폭양 밑 던진 들판엔

  겹놓인 기왓장 하나 없다.

  우렁찬 군가 날낸 손발대신

  병풍을 두른 깎아세운 산위엔 흰구름이 머물고

  무덤 속에서도 못잊을 광복을 못이룬 채

  한번 총칼을 써보지도 못하고

  해산치 않으면 안 됐다

  피와 살을 나눈 우리 동지는

  얼굴조차 모를지라도

  푸른 하늘과 푸른 바다가

  따스한 입김과 다정한 목소리로

  귓속에 속삭인다

  조국은

  남북으로 양단되고 사상으로 분열된 채

  많은 무리가 차버렸다

  님이시어!

  눈물은 속된 것!

  우리 지하에서 목놓아 웁시다.

  무수한 별이 잇었든 내 별은 하나 뿐이며

  쓸개를 물고 기시밭에 쓰러졌어도

  우리의 길은 가야만 한다

  우리는 내 사랑하는 조국과

  함께 사라지리니 님은

  이 멍든 가숨 속에 살아있으라.

  가할루

  끝없는 태평양 외딴 섬에

  피땀으로 엮어진 전설이 있다

  해바라기 고개 쳐드는 시절이 올 때마다 우리는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전설을 이야기하리라.

  (1957. 10. 13)

                             -전문(p. 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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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와이 한인문학동인회 엮음 『하와이 시심詩心 100』에서/ 2005. 1. 5. <관악> 펴냄

   * 저자: 익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