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상해로 밀항하는 호놀루루 배 안에서/ 우남(雩南) 이승만

검지 정숙자 2023. 10. 10. 02:51

 

    상해로 밀항하는 호놀루루 배 안에서

 

     우남雩南 이승만

 

 

  우리 민국 2년 동짓달에 하와이 먼 길손이 몰래

  배에 올랐네

  무거운 판주문이 쇠사슬에 얽매이고

  무쇠비 사방이라 캄캄하게 어두운데

  홍로불만 따뜻하다

  아침이 오고 나면 산천이 어리울까

  세월이 어수선한 이 한밤에

  표연히 태평양 위를 가는데

  누구가 이 가운데 황천이 있을 줄 알리요.

 

  북풍에 돛 다는 새벽

  초라한 옷의 길손

  밤새도록 숨어 있다가

  밝아서도 더디 나오니

  행색은 중국 사람

  이름마저 약한아約翰兒

  그 신산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나

  몇몇이 알아주니 기쁘도다.

 

  뱃사공이 날더러 누구냐기에

  중국의 거국신去國臣을 일컬었다

  양자강 운수의 청춘 하직하고

  단도(檀島, 하와이) 풍상에 백발을 더했을 뿐

  황금의 세계와는 작별이요

  녹수 푸르른 내 고장 꿈 잊어본 일 없었노라

  들리는 북쪽 소식 처연히 주고받던

  이 늙은이 이 신세 가련하다.

  (1920. 11. 15.)

                              -전문(p. 34-35)

 

   ----------------------------

   * 하와이 한인문학동인회 엮음 『하와이 시심詩心 100』에서/ 2005. 1. 5. <관악> 펴냄

   * 이승만(1875-1965, 90세)/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하와이에서 작고하였다. 이 시는 밀항선 밑창에 중국인 시체를 실은 관 옆에 숨어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