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로 밀항하는 호놀루루 배 안에서
우남雩南 이승만
우리 민국 2년 동짓달에 하와이 먼 길손이 몰래
배에 올랐네
무거운 판주문이 쇠사슬에 얽매이고
무쇠비 사방이라 캄캄하게 어두운데
홍로불만 따뜻하다
아침이 오고 나면 산천이 어리울까
세월이 어수선한 이 한밤에
표연히 태평양 위를 가는데
누구가 이 가운데 황천이 있을 줄 알리요.
북풍에 돛 다는 새벽
초라한 옷의 길손
밤새도록 숨어 있다가
밝아서도 더디 나오니
행색은 중국 사람
이름마저 약한아約翰兒
그 신산 이루 다 말할 수 없으나
몇몇이 알아주니 기쁘도다.
뱃사공이 날더러 누구냐기에
중국의 거국신去國臣을 일컬었다
양자강 운수의 청춘 하직하고
단도(檀島, 하와이) 풍상에 백발을 더했을 뿐
황금의 세계와는 작별이요
녹수 푸르른 내 고장 꿈 잊어본 일 없었노라
들리는 북쪽 소식 처연히 주고받던
이 늙은이 이 신세 가련하다.
(1920. 11. 15.)
-전문(p. 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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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와이 한인문학동인회 엮음 『하와이 시심詩心 100년』에서/ 2005. 1. 5. <관악> 펴냄
* 이승만(1875-1965, 90세)/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하와이에서 작고하였다. 이 시는 밀항선 밑창에 중국인 시체를 실은 관棺 옆에 숨어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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