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곡선에서 배회 중
박정민
'남구에서 배회 중인 손 모 씨를 찾습니다. 북구에서 실종된 박 모 씨는 체크무늬 바지를 입고 체크 가방을 소지했습니다.'
안전 안내 문자는 안전하지 않지만
체크무늬가 되지 못한 삼선 줄무늬 슬리퍼는
꺾이지 않는 곡선을 배회 중
서로를 적당히 무시하는 거리만큼
어색한 바닥의 질감 즐겁다
오늘은 발 냄새도 참을 만하다
보도블록의 어긋난 무게중심과 모서리의 즐거운 도발
하늘은 높고 넓어 급할 일 없는 왼발과 슬리퍼
초록 점멸하고
삐뚠 곡선만 긋느라 체크로 진화하지 못한 채
나는 당신을 끌고 다녔을까, 끌려다녔을까
버려지고 잃어지는 것은 왜 늘 홀수일까
변곡점 찾지 못한 당신의 노화는 안전하신가
-전문(p.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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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목문학회 사화집 『즐거운 곡선에서 배회 중』에서/ 2023. 8. 10. <파란> 펴냄
* 박정민/ 1997년 『문예사조』로 등단, 시집『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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