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즐거운 곡선에서 배회 중/ 박정민

검지 정숙자 2023. 10. 10. 01:54

 

    즐거운 곡선에서 배회 중

 

     박정민

 

 

  '남구에서 배회 중인 손 모 씨를 찾습니다. 북구에서 실종된 박 모 씨는 체크무늬 바지를 입고 체크 가방을 소지했습니다.'

  안전 안내 문자는 안전하지 않지만

  체크무늬가 되지 못한 삼선 줄무늬 슬리퍼는

  꺾이지 않는 곡선을 배회 중

  서로를 적당히 무시하는 거리만큼

  어색한 바닥의 질감 즐겁다

  오늘은 발 냄새도 참을 만하다

  보도블록의 어긋난 무게중심과 모서리의 즐거운 도발

  하늘은 높고 넓어 급할 일 없는 왼발과 슬리퍼

  초록 점멸하고

  삐뚠 곡선만 긋느라 체크로 진화하지 못한 채

  나는 당신을 끌고 다녔을까, 끌려다녔을까

  버려지고 잃어지는 것은 왜 늘 홀수일까

  변곡점 찾지 못한 당신의 노화는 안전하신가

      -전문(p.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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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목문학회 사화집 『즐거운 곡선에서 배회 중』에서/ 2023. 8. 10. <파란> 펴냄 

  * 박정민/ 1997년 『문예사조』로 등단, 시집『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