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웃음은 무슨 색일까
이선락
기차를 타고······ 너는 도착하지 않는다 새벽부터 비 내렸고
마른장마라 했지
얘, 기적 소리 좀 낮춰 줄래, 기차가 흘러간 뒤였다 듬성한 갈비뼈 사이로 블랙커피를 쏟았다
이런, 속까지 배어들겠군
*
눈을 떴는데, 나는 도착하지 않는다 빗소리
무릎까지 올라온 건 뭐지? 오늘 금요일인가
얘 비 맞지 말고 내게 들어와, 기적 따윈 늘 산모롱이를 엇나가는 거야
커피 젖은, 하얀 웃음들
*
물고기자리를 읽고 있었다 나를 물어보아도
아무도 말해 주지 않는다 머릿속을 지우자 뒤통수 해지고
비 오는 날 물고기들은 어디로 헤엄칠까? 다음 구름을 읽는데, 흘러간다
가슴지느러미 다 드러내 놓고······, 머리가 구겨진다
11시 11분이에요 가슴을 펴 봐요, 구겨진 모서리를 뒤적거리지만······
번개가 지나간다
*
뚜루루뚜 뚜루루, 가을비
뒤통수 한 컷 비 젖는다 서너 컷을 건너뛰면
나는 어디로 갔을까? 물고기자리에도 커피 잔에도
도착하지 않는다 비가 오고
구름이 찢어진다
*
기차가 지나가고 비가 오고, 물고기자리 지나고
나는 물병자리까지 스며든 머그 컵을 뒤집으며 나머지 커피를 쏟고
-전문(p. 8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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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목문학회 사화집 『즐거운 곡선에서 배회 중』에서/ 2023. 8. 10. <파란> 펴냄
* 이선락/ 2020년『울산문학』 & 2021년『동리목월』 &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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