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제35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_충북선 : 유종호

검지 정숙자 2023. 9. 16. 01:49

<2023, 제35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

 

    충북선忠北線

 

    유종호

 

 

  충북선은 내 마음의

  자연사 박물관

  출발의 설레임은 언제나

  종점의 허망으로 끝나고

  달려와 사라지는 풍경에 끌리어

  혼자만의 낮꿈을 즐겼지.

  카이저 수염의 백작인가

  인단仁丹 광고판이 보이면

  유치하게 부자가 되고 싶었지

  타개진 가마니로 몸을 감싸고

  화물차에 실려 가는 장정들

  반역의 꿈은 사납고 무서워

  무시로 먼 산이나 바라보았지

  정하井下, 오근장梧根場, 도안道安, 소이蘇伊 

  이국정서의 낯선 매혹에 

  팔랑개비 나그네로 살고 싶었으나

  지갑이 얇아서 책장이나 뒤졌지

  선불 맞은 맹수의 비명

  증기 기관차의 기적 소리 아니 나고

  들리느니 이제는

  점잖은 디젤의 기적일 뿐이나

  충북선은 여전히 3등 노선

  내 고독의 자연사 박물관

  잃어버린 시간의 잔설殘雪이 푸르구나 

     -전문(p. 38-39)

 

    --------------------------

  * 시집『충북선忠北線』에서/ 2022. 6. 20. <서정시학> 펴냄  

  * 유종호/ 1935년 충북 충주 출생, 첫 책 『비순수의 언어』,  최근의 『그 이름 안티고네』에 이르는 비평적 에세이 20여 권

'사화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달의 귀환/ 박산하  (0) 2023.09.27
설날/ 구광렬  (0) 2023.09.24
제34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 어머니 범종 소리 : 최동호  (0) 2023.09.15
혼자의 넓이/ 이문재  (2) 2023.09.13
목도장/ 장석남  (0) 2023.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