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혼자의 넓이/ 이문재

검지 정숙자 2023. 9. 13. 02:39

<2021, 제33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

 

    혼자의 넓이

 

    이문재

 

 

  해가 뜨면

  나무가 자기 그늘로

  서쪽 끝에서 동쪽 끝으로

  종일 반원을 그리듯이

  혼자도 자기 넓이를 가늠하곤 한다

  해 질 무렵이면 나무가 제 그늘을

  낮게 깔려오는 어둠의 맨 앞에 갖다놓듯이

  그리하여 밤새 어둠과 하나가 되듯이

  우리 혼자도 서편 하늘이 붉어질 때면

  누군가의 안쪽으로 스며들고 싶어한다

  너무 어두우면 어둠이 집을 찾지 못할까 싶어

  밤새도록 외등을 켜놓기도 한다

  어떤 날은 어둠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유리창을 열고 달빛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그러다가 혼자는 자기 영토를 벗어나기도 한다

  혼자가 혼자를 잃어버린 가설무대 같은 밤이 지나면

  우리 혼자는 밖으로 나가 어둠의 가장자리에서

  제 그림자를 찾아오는 키 큰 나무를 바라보곤 한다

    -전문(p. 19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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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35회 지용제 사화집 『어머니 범종소리』/ 2022. 9. 14. <옥천군· 옥천문화원· 지용회> 펴냄 (비매품) 

  * 이문재/ 경기 김포 출생, 1982년 『시운동』 4집에 「우리 살던 옛집 지붕」 발표하며 등단, 시집『산책시편』『마음의 오지』『제국호텔』『지금 여기가 맨 앞』『혼자의 넓이』등, 산문집『내가 만난 시와 시인』『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