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끼니/ 예순용

검지 정숙자 2019. 11. 14. 23:48

 

    끼니

 

    예순용

 

 

  무수한 발목들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어린 비둘기는 주저함이 없다

  자동차 경적이 부딪쳐도 요지부동이다

  몇 번의 날갯짓으로 펄떡이더니 이내 종종걸음이다

  오직 한 끼를 구걸하기 위해

  어린 비둘기는 콘크리트의 시선을 답습하며

  걸어야만 한다

  인도 같은 차고

  차도 같은 인도 속에서

  스텝과 박자에 맞춰 생존과 생활 사리을 이리저리

 

  나는 비둘기를 감상할 틈도 없이 전단지를 들고 뛴다

  한 장에 30원, 1000장은 천 개의 손바닥이 아니라

  만 개의 손바닥을 만나는 일이다

  안 받아준 사람에겐 잘못이 없고

  그들 앞에 장애물처럼 등장한 나는 잘못이다

  전단지와 나의 감정은

  처음부터 버려지기 위해 태어났으니까

 

  순식간에 날아가는 비둘기는

  시간제일까 정규직일까

  스스로 고용하고 스스로 노동하니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 광장에서 끼니라는 말을

  실감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눈물을 훔치며 바라본 저쪽

  밥알 같은 이팝꽃들이

  화서花序에 맞추어 수북이 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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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토피아』2019-가을호 <신작시>에서

  * 예순용/ 2019년『열린시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