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조대한_ 당신의 부재,그 이후를...(발췌)/ 그러니까 스카프 : 정선희

검지 정숙자 2019. 11. 21. 02:26

 

 

    그러니까 스카프

 

    정선희

 

 

  옷보다 스카프가 많다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스카프가 더 자주 외출한다 스카프가 펄럭이면 바다 위로 해가 지고, 자동차 위로 노란 은행잎이 떨어진다, 목의 완성은 스카프죠

 

  아들 기일이에요 겨우 고3이었어요 집 앞에서 죽었어요 매일 목을 매는 여자 납골당에서, 벗어둔 신발 앞에서, 무심코 아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사려다가, 떨어지는 꽃잎을 닮았다고 생각하다가

 

  훤히 드러난 목에 스카프를 맨다 단단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일 물방울무늬가 발아래로 또르르 떨어진다 여름이 키운 나무마다 스카프를 둘러준다 여름이 무성하다

  -전문-

 

 

  ▶ 당신의 부재, 그 이후를 살아가는 시_ 조대한/ 문학평론가

「그러니까 스카프」라는 시에서는 여전히 부재하는 대상을 그리워하고 애도하는 이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이번에는 그 대상이 연인이 아니라 자식이라는 점이 슬픔의 강도를 조금 더 짙게 만든다. 하루하루 죽음 같은 삶을 이어가는 '여자'는 벗어둔 텅 빈 신발 앞에서, 무심코 반찬을 사려는 습관적인 일상들 사이에서 부재하는 이의 존재감을 불현듯 감각한다. 시의 제목이기도 한 '스카프'는 자식의 납골당에서 매번 자신도 목을 매는 듯한 엄마의 목 졸린 삶과 고통을 잘 드러내주는 소재이자, 사랑하는 이의 빈자리를 더욱 부각시키는 시적 상징물이다.또한 그 스카프는 부재하는 대상의 빈틈을 가려주는 가림막이기도 하다. 계절이 지날 때마다 바람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훤히 드러난 아이의 빈자리는 더욱 선득하게 느껴진다. 여자는 아이가 떠나 텅 비어버린 마음에, 그렇게 "훤히 드러난 목에 스카프를 맨다" 그렇게 단단히 스카프를 매다 보면, 희미해진 아들의 흔적과 헐거워진 본인의 삶도 잠시나마 무언가로 단단히 묶여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날씨와 기분에 따라 골라 맨 색색의 스카프는 잠깐의 치장이자 얇은 허상일 뿐이지만, 부재하는 이를 자신의 일상에 잠시나마 묶어두는 미약한 끈이 되어주기도 한다. 매년 돌아오는 아들의 기일, "단단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는 듯 여자는 키워낸 슬픔의 마디마다 올차게 스카프를 맨다. 마주하기 힘들었던 그 슬픔은 아름답게 펄럭이는 시적 순간이 되어, 잠시나마 아릿하고 담담하게 빛난다.(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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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에티카』2019-하반기호 <시에티가 시인/ 작품론>에서

  * 정선희/ 경남 진주 출생, 2012년『문학과의식』 2013년《강원일보》신춘문예로 등단

  * 조대한/ 경남 남해 출생, 2018년『현대문학』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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