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소문/ 박소원

검지 정숙자 2019. 11. 14. 01:31

 

    소문

 

    박소원

 

 

  예전에는 다른 이름이었습니다만

  소문, 풍문風聞이나 루머보다는

  일말의 진정성이 느껴집니까

  어둠과 어둠 사이를 적과 적 사이를

  절망과 절망 사이를 유전하는 운명론

  이름을 바꾸었지만 왜 자꾸 나빠집니까

  방향 없는 움직임은 정처가 없고

  입에서 입으로 거처를 바꾸는

  다시 또 건너가는 나는,

  누구의 의지이고 누구의 의도입니까

  달나라의 토끼처럼

  심심하면 쿵더쿵 방아를 찧는 겁니까

  알 수 없는 나날들 왜 질문만 늘어갑니까

  물 없는 저수지까지 떠 밀려와

  죽은 물고기 위에서 혼굿처럼 솟구치지만

  어떤 구체성도 갖지 않는 것은

  적어도 나의 소신이라고 쓰겠습니다

  수문水門을 열어 두어도 물이 새지 않는 저수지처럼

  어떠한 계획도 미래도 없는

  실체實體 없는 가뭄의 나날들

  당신들 입안에 든 건조성을 살짝 높이면

  부싯돌처럼 탁탁 부딪치면

  후훅, 불꽃이 일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나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나는 이름만 있고 성이 없는 폐문閉門의 세계입니다

   -전문, 『두레문학』2016-하반기

 

  

    ---------------

  *『문학에스프리』2019-가을호 <신작시/ 시인이 고른 시>에서

  * 박소원/ 2004년『문학선』으로 등단, 대표시집『슬픔만큼 따뜻한 기억이 있을까』

'잡지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비/ 김길전  (0) 2019.11.14
해적 방송/ 최백규  (0) 2019.11.14
그늘의 빛/ 김세영  (0) 2019.11.13
새의 노래/ 서상영  (0) 2019.11.12
전 애인에게 새로운 애인이 생겼을 때/ 양애경  (0) 2019.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