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겸_시의 발명에 대한 췌언(발췌)/ 여름 연못 : 이승희

검지 정숙자 2024. 8. 25. 02:31

 

    여름 연못

 

     이승희

 

 

  처음 보는 연못이었다

  버드나무가 물 위를 걷고 있었고

  가끔 물을 열어 보느라

  투명한 무릎을 꿇기도 했다

 

  이 기슭에서 저 기슭까지

  누구의 마음일까

  버드나무도 그게 궁금했을까

 

  당신을 따라 건너가던 여름이 있었다

  마음을 닮은 것들

  그런 것들을 주었고

  그런 것들을 잃었다

 

  그런 것들이 물속에서 물고기처럼 흩어졌다

  나쁘지 않았다

 

  이거 가져

  너 가져

 

  괜찮아

  다 가져도 돼

 

  연못은 그런 마음

  버드나무 아래에서 오래 살았다

  여름이 멈춘 후에도

  연못이 사라진 후에도

  그것들의 이 기슭과 저 기슭까지

 

  물의 얼굴을 한

  버드나무 잎들이 떨어지고 있다

 

  연못은 그렇게 생겨나기도 한다

    -전문, 웹진『같이 가는 기분』, 2024-봄호

 

 시의 발명에 대한 췌언(발췌) _김겸/ 시인 · 문학평론가 · 소설가

  시는 또 이렇게 애틋한 사랑과 그 상실의 기록일 때가 있다. 버드나무와 여름 연못의 사랑 이야기. 비가 많은 여름엔 이렇게 산기슭에 연못도 생기는 법. 그 물 위를 버드나무 가지가 "걷고 있었"다. 버드나무도 연못의 속내가 궁금했을 것. 저렇게 투명한 가슴을 지닌 이의 속내는 무엇일까, 하고. 그렇게 버드나무는 흔들흔들 바람이 부는 대로 여름 한 철을 "당신을 따라" 걷는다. 연못은 그런 버드나무에게 "마음을 닮은 것들"을 내어 주었고 또 그런 것들을 잃었다. "이거 가져/ 너 가져// 괜찮아/ 다 가져도 돼"라고 말하면서. 연못은 그렇게 모든 것을 받아주고 내어주는 마음이었다. 그리하여 연못은 여름이 멈추어도 자신이 사라진 후에도 버드나무 아래서 오래 살았다.

  그렇게 한 시절을 맑고 투명한 이 곁에서 살아서일까. 이제 버드나무는 "물의 얼굴을" 한 잎들을 떨군다. 사랑하면 서로 닮는다고 하지 않는가. 연못은 사라졌어도 연못은 언제고 그렇게 다시 생겨난다.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아니듯이. 언젠가 어디선가 또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 나도 누군가에게 투명한 연못 같은 존재이고 싶다. 내가 사라진 후에도 그 맑음이 누군가에게 물빛으로 남을 그런 사람이고 싶다. 이거 가져, 너 다 가져, 괜찮아, 다 가져도 돼,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사람. (p. 시 226-7/ 론 227-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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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경계』 2024-여름(61)호 <지난 계절의 시 읽기>에서

  * 이승희/ 1997년 『시와사람』으로 등단, 199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여름이 나에게 시킨 일』등

  * 김겸/ 서울 출생,  2002년 『현대문학』 평론 부문 &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 202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장편소설『여행의 기술   Hommage to route 7』, 평론집『비평의 오쿨루스』, 시집『하루 종일 슬픔이 차오르길 기다렸다』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