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에서
이영광
떠남과 머묾이 한 자리인
강물을 보며,
무언가를 따지고
누군가를 비워했다
모든 것이 나에게 나쁜 생각인 줄
모르고서
흘러도, 답답히 흐르지 않는
강을 보면서,
누군가를 따지고
무언가를 미워했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상하지 않고
오직 나만 피 흘리는 중이란 걸
모르고서
그리고 그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 줄도
까맣게 모르고서
-전문, 『시로 여는 세상』, 2004-봄호
▶ 시의 발명에 대한 췌언(발췌) _김겸/ 시인 · 문학평론가 · 소설가
이렇게 시는 후회와 성찰의 몫을 감당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우리는 저마다 "무언가를 따지고/ 누군가를 미워"하며 산다. 이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타자는 절대적 타자이며 감옥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나쁜 생각인 줄 모르고서", "아무도 상하지 않고/ 오직 나만 피 흘리는 중"이라는 것을 모르고서 말이다.
화자는 따지고 미워하는 것을 "흘러도 답답히 흐르지 않는", 그리하여 "떠남과 머묾이 한 자리인" 강물을 보며 행했다 말한다. 이때 강은 폐색閉塞된 우리 시대의 삶의 조건을 은유하며, 각자가 서 있는 자리에서 '존버'라는 대응 방식 외에는 아무것도 취할 수 없는 정신적 상황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무도 상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 피 흘리는 중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 줄" 몰랐다는 것은, 그 견딤 속에 포함된 자기 감수甘受의 태도를 드러낸다. 따짐과 미움의 반대급부를 오로지 스스로의 피 흘림으로 감당하겠다는 태도가 곧 시인됨의 근본이 아니겠는가. (p. 시 228/ 론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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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경계』 2024-여름(61)호 <지난 계절의 시 읽기>에서
* 이영광/ 1998년 『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직선 위에서 떨다』『그늘과 사귀다』『아픈 천국』『나무는 간다』『끝없는 사람』 『해를 오래 바라보았다』『깨끗하게 더러워지지 않는다』 등
* 김겸/ 서울 출생, 2002년 『현대문학』 평론 부문 & 200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 & 2021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장편소설『여행의 기술 Hommage to route 7』, 평론집『비평의 오쿨루스』, 시집『하루 종일 슬픔이 차오르길 기다렸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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