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누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검지 정숙자 2024. 8. 25. 01:07

 

    누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 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 떼가

  누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 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전문(p. 169-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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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경계』 2024-여름(61) <오늘의 주목할 시인/ 대표시>에서

  * 복효근/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꽃 아닌 것 없다』외, 디카시집『허수아비는 허수아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