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복효근
건기가 닥쳐오자
풀밭을 찾아 수만 마리 누 떼가
강을 건너기 위해 강둑에 모여섰다
강에는 굶주린 악어 떼가
누들이 물에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나는 화면에서 보았다
발굽으로 강둑을 차던 몇 마리 누가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를 향하여 강물에 몸을 잠그는 것을
악어가 강물을 피로 물들이며
누를 찢어 포식하는 동안
누 떼는 강을 다 건넌다
누군가의 죽음에 빚진 목숨이여, 그래서
누들은 초식의 수도승처럼 누워서 자지 않고
혀로는 거친 풀을 뜯는가
언젠가 다시 강을 건널 때
그중 몇 마리는 저쪽 강둑이 아닌
악어의 아가리 쪽으로 발을 옮길지도 모른다
-전문(p. 169-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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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와경계』 2024-여름(61)호 <오늘의 주목할 시인/ 대표시>에서
* 복효근/ 전북 남원 출생, 1991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꽃 아닌 것 없다』외, 디카시집『허수아비는 허수아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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