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31회 정지용문학상 수상작>
저녁이 올 때
문태준
내가 들어서는 여기는
옛 석굴의 내부 같아요
나는 희미해져요
나는 사라져요
나는 풀벌레 무리 속에
나는 모래알, 잎새
나는 이제 구름, 애가哀歌, 빗방울
산 그림자가 물가의 물처럼 움직여요
나무의 한 가지 한 가지에 새들이 앉아 있어요
새들은 나뭇가지를 서로 바꿔 가며 날아 앉아요
새들이 날아가도록 허공은 왼쪽을 크게 비워 놓았어요
모두가
흐르는 물의 일부가 된 것처럼
서쪽 하늘로 가는 돛배처럼
-전문(p. 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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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35회 지용제 사화집 『어머니 범종소리』/ 2022. 9. 14. <옥천군· 옥천문화원· 지용회> 펴냄 (비매품)
* 문태준/ 1994년『문예중앙』으로 등단, 시집『수런거리는 뒤란』『맨발』『가재미』『그늘의 발달』『먼곳』『우리들의 마지막 얼굴』『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등, 산문집『느림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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