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시학(作詩學)/ 정숙자 나의 작시학(作詩學) 정숙자 상상력 꼽치는 데 왕도는 없다 봉투 만든다 ‘헌 종이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 죄 아니다 봉투 만든다 부쳐온 책 봉투는 다시 책 봉투 각양각색 이면지/파지로는 A4용지 넘어간 달력으로는 네 귀의 합 360°짜리 편지 담을 봉투 만든다 칼 풀 자 판지, 이들은 ..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29
나의 작시창(作詩窓)/ 정숙자 나의 작시창(作詩窓) 정숙자 문장을 주도(做到)하여 궁극에 이르면 다른 기교가 없고 다만 알맞을 뿐이다. -『채근담』 휘뚜루마뚜루 편리했던 ‘처럼’ 실밥인 줄 모르고 버젓이 내걸었던 ‘처럼’ 앞 문장과 뒷말의 솔기에 불과했던 ‘듯’ 보충 설명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던 ‘듯’ ..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26
모래의 각(角)/ 정숙자 모래의 각(角) 정숙자 닳아지면 둥글어지고 둥글어지면 다시 깨졌다 늘 새로운 각이 솟았다 웅크리고 깨지고 죽고 죽어 다시 굴렀다 영원히 태어나지 않아도 좋을 소멸에 이르는 길은 온전히 몸 벗는 일 바위를 벗고 돌을 벗고 최후의 각마저 벗고 낙타가 차올리 는 발자국마다 송이송이 ..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25
고백록/ 정숙자 고백록 정숙자 센 시간을 꼬박꼬박 입금한다 두둑이 쌓인다 다시 꺼내어 쓸 수 없지만 년 월 일 시 분 까지 기록한다 편지의 말미, 읽은 책의 끝, 노트 정리한 날, 초고와 탈 고 일자, 핸드메이드 엽서의 한쪽 귀퉁이, 몇 음보의 메모 끝에도 기록, 기록, 기록…… 이것은 쫓기는 자의 발자..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24
그림자를 수집했다/ 정숙자 그림자를 수집했다 정숙자 거실 바닥에 신도시가 생겨났다 나날이 빌딩 숲 높아간다 한 달 한 달 징검다리살림 꾸리는 터에 도시를 세우다니! 그거…… 참 부자 되었다는 거 부자 된다는 거 쉽지 않은 일이었지 갈수록 집은 좁아지고, 굴절되는 햇빛 아래 형형색색 책 들은 자고, 펼쳐 볼 ..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22
정신승리법/ 정숙자 정신승리법* 정숙자 그림자의 힘으로 사는 거야 그림자는 밟힘의 힘으로 사는 거고 어둠을 봐 그림자가 없잖아 걷는다는 것은 밟는다는 것이고 밟는다는 것은 나아간다 는 것이고 밟힌다는 것은 한순간 누군가의 대지가 되어준다 는 뜻이야 그렇지만 그 누구라도 맨 먼저 자신의 그림자..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21
흘림체가 흐르는 공간/ 정숙자 흘림체가 흐르는 공간 정숙자 지문이 그득하다 껍질 거슬러 살 속, 깡치 속, 씨앗 속까지 스몄으리니 과일을 깨문다는 건 켜켜의 지문 허무는 일 어찌 쌓은 공력일까 농부 이전에 나무는 벌써 흙의 태양의 바람의 비의…… 새들의 노래와 구름…… 이 슬과 전설의 지문까지도 온몸에 새겼..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19
죽음의 곡선/ 정숙자 죽음의 곡선 정숙자 직선의 한끝은 코너다 직선의 다른 한끝은 삶이며 양 끝이 맞닿은 그 직선은 원으로 복귀한다 발자국과 발자국을 잇는 직선 하나하나가 인생을 그려 나 간다. 고유한, 비슷비슷한 발자국 위로 다른 발자국이 포개 지는 동안 아장아장 세워졌던 최초의 직선들은 꼬부..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17
데미안 허스트의 해골*/ 정숙자 데미안 허스트의 해골* 정숙자 백금으로 두개골의 본을 뜨고 1,106.18캐럿의 다이아몬 드 8,601개를 박았다. 이 해골은 탄소동위원소 측정 결과 1720- 1810년경, 30대 중반의 유럽 남성으로 밝혀졌다. “죽음의 상징인 두개골을, 사치의 상징인 다이아몬드로 덮어 버림으로써 욕 망 덩어리인 인..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16
혈행/ 정숙자 혈행 정숙자 읽은 책과 못 읽은 책. 읽어야 할 책과 읽고 있는 책. 읽을 필요 없는 책과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 내버려야 할 책과 향 기로운 책. 나쁜 책. 놀라운 책. 이미 구한 책과 꼭 사려는 책. 나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책. 선물 받은 책. 방향과 모토 가 궁금한 책. 새로 나온 책. 두꺼운 ..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