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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외 2편/ 이영춘

눈 내리는 날 외 2편      이영춘    이렇게 적막이 내리는 날이었다  할머니 우리 집에 와 증손자 봐 주시고 귀향하시던 날  눈길에 버스가 굴렀다  그 길로 몸져누우신 할머니,  끙, 힘찬 거동 한 번 못하시고 그 길로 떠나셨다   임종 전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뵈었던 그 얼굴,  수업해야 한다며 급하게 뒤돌아섰던 시간 속에서  다시 올게, 하고 내달았던 그 문지방 문턱에서  나는 평생 그 문턱에 걸려 휘청거리고 있다   입속에 동전 세 닢 노잣돈으로 삼키고 가셨다는 그 임종이  내 창자에 걸린 듯  동전은 수시로 내 목구멍에서 울컥-울컥- 숨이 멎는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할머니의 그림자 등 뒤에서  그 문지방 다시 넘지 못한 거울 뒤편에서  나는 오늘도 털 많은 짐승으로 운다      -전문(..

참회록을 쓰고 싶은 날 1/ 이영춘

참회록을 쓰고 싶은 날 1      이영춘    우울이 청동거울로 밀려온다  거울 뒤편이 보이지 않는다  거울 뒤편에 숨은 얼굴이 눈물을 흘린다  제대로 살지 못했다고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고  성자 같은 도량도 아량도 없이  남의 등 뒤에 숨어 꼬리만 드러낸 채  꼬리 감춘 채  그 얼굴 보이지 않는다  창밖 나무 이파리들이 흔들린다  소리 없이 흔들린다  갈 곳 몰라 흐느끼는 바람 같이  고요를 물고 들새 한 마리 날아간다   내 부끄러운 얼굴은 어느 유목민의 후예인가  툰드라의 골짜기를 떠도는 바람인가  아득한 그 길 물어 내 발자국 지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집 표제작인 이 시편은 청동거울로 뒤편에서 눈물을 흘리는 숨은 얼굴을 향한다. '청동거울'은 아마도 「참회록」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