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08 2

기시감 외 1편/ 고영

기시감 외 1편      고영    한적한 시골 도로에  한적한 시골 버스가 지나간다   승객도 없고  아무런 감흥도 없이 지나가는 버스를 물끄러미     말린 겨우살이를 손질하며 본다   겨우살이는 참나무에 얹혀살고  우리는 겨우살이에 얹혀산다   유난히 찬란한 봄볕 아래서  우리는 서로 간절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버스 안에서 호기심의 눈빛으로 우리를 내다보는 운전기사에 대한 배려    하루에 네 번  겨우 형체만 보여주고 사라지는 버스를 닮아가는 것인지  너는 단양에 온 후  정기적으로 미소를 꺼내 보여준다  그것이 최선이라는 듯   노후를 맞기도 전에  몸의 중심이 텅 비어버린, 그래서 앉는 것조차  불편한  의자에 묻혀   너는 버스의 종착지를 보고  나는 버스가 흘리고 간 매연煤..

백지/ 고영

백지     고영    당신을 초기화시키고 싶었네.   우리가 세계와 만나지 않았던 순수의 시절, 나를 만나 가벼워지기 이전의 침묵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네.   당신은 보이지 않는 강박  보이지 않는 공포  영혼으로나 만날 수 있는 미래, 라고 했네.   아아, 당신이 옳았네  아아, 당신이 옳았네.   문장 몇 개로 이을 수 있는 세계는 없었네. 오지 않는 답신은 불길한 예감만 낳을 뿐  내 흉측한 손은  보이지 않는 행간을 떠돌고 있었네.   고양이는 고양이의 방식대로 구르고  자갈은 자갈의 방식대로 구르고  펜은 펜의 방식대로 구르고   그러나 모두 근엄한 얼굴이었네.   가득 들어차서 오히려 불편한 자세로부터  당신의 미소를 꺼내주고 싶었네.  너무 깨끗해서 두려운  당신의 그 두근거리는 심장을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