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동태의 피/ 정숙자 피동태의 피 정숙자 시퍼래서 너무너무너무 시퍼래서 모조리 하나도 남김없이 감자의 눈들을 파버렸다네 감자는 그 즉시 장님이 되고 나는 진리를 얻게 되었지 아무리 목마른 날도 너무너무너무 시퍼런 눈빛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 칼은 눈을 파버릴 수 있다는 것을 그런데 그날로…… ..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8.29
나의 작시운(作詩運)/ 정숙자 나의 작시운(作詩運) 정숙자 시간 넉넉하던 날 나는 진짜로 시인이었다. 그리움 기다림 도 간절했었지. 급할 것 조금도 없이 졸다 깨다 독서도 하고, 사소한 것에 마음 붙이며 조금은 쓸쓸키도 했어. 남들이 상 탈 때 박수치면서 나도 저렇게 되어봤으면, 상장 한번 안아봤으면 잔물결 끼..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8.28
괜찮은 일 100원어치/ 정숙자 괜찮은 일 100원어치 정숙자 어제가 초복이었습니다 날것이 잘도 생겨나는 요즘 많지도 않은 음식물쓰레기를 들고 꽃밭에 내려갔습니다 공연스레 헛기침했습니다 풀도 좀 뽑고 호미로 땅바닥을 툭툭 치기도 했습니다 “에쿠, 반가워요!” 돌멩이가 인사하더군요 그렇게 저렇게 떠드는 ..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8.27
나비홀릭(butterfly holic)/ 정숙자 나비홀릭(butterfly holic) 정숙자 손톱나비 버려지는 전단지나 신문, 잡지 등에서 나비를 오려 내는 수공이 오늘도 이어진다. 그건 나비에 대한 애정이며 종이에 대한 우정이며 나 자신에 대한 신의이다. 살아 숨 쉬는 나비 를 채집하고 표본을 만드는 행위는 나비사랑이 아니라 신성 모독일 ..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8.25
연애 천문학/ 정숙자 연애 천문학 정숙자 그로 인해 움트고 푸르러지고 설핏 외로워진다 긴지름 긴반지름 짧은지름 짧은반지름 타원궤도로 자전/공전한다 앎 · 황홀 · 상처도 계절풍일까 기압골일까 원(圓)이 아니라 타원(橢圓)궤도로 흐르는 사랑 · 행성은 타원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태양은 그 중심..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8.24
사랑대첩/ 정숙자 사랑대첩 정숙자 햇빛 잔뜩 머금었어요 흔들렸어요 눈뜨지 못했어요 불붙었어요 막 탔어요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다시 살아났어요 홀로 혹은 바람과 물별* 잔뜩 일으켰어요 몰라요 마침내 쓰러졌어요 (국어사전에서 ‘태양’을 찾으라면 나는 ‘사랑’을 짚을 것이다. 사랑이 지닌 열도..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8.24
단체 초상화/ 정숙자 단체 초상화 정숙자 어느 것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다 눈까풀 서쪽으로 내려졌을 때 우리는 가장 나쁜 죄를 짓 는다 결혼-섹스-종족보존의 등식과 함께 먹고 먹히는 무간지옥으로 천국의 아이들을 끌어내린다 황- 흑- 백- 무제한 유괴한다 맑- 넓- 깊- 푸른 하늘은 지상으로 떨어진 아이들..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8.23
러브칵테일반응/ 정숙자 러브칵테일반응 정숙자 저하늘가득히돌아와웃는 당신의얼굴을보고 나는가을이온줄알았다 저강물깊숙이반짝거리는 당신의노래를듣고 나는가을이온줄알았다 피곤에잠긴저녁 태양과새들이열어젖히는아침 달뒤에숨었던귀뚜라미가 내마음모조리톱질하는밤 자꾸만바람이일어 자꾸만눈..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8.22
그러니까 오늘은 8년 후, 1월/ 정숙자 그러니까 오늘은 8년 후, 1월 정숙자 그 집 향해 버스에서 내린다 비닐봉지에 참외 몇 알 사들고 드나들던 집 푸성귀 한두 단 싸들고 찾아갔던 집 서문 받으러…… 새 시집 끼고…… 생신날 국화꽃도 안고 갔던 집 캉캉캉 대문간 무너뜨리던 외국종 흰 개 극성맞던 집 길과 길, 구름과 구름..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8.21
나의 작시몽(作詩夢)/ 정숙자 나의 작시몽(作詩夢) 정숙자 선택한 길은 늘 외롭고 멀다 시 향해 기도하고 시를 위해 걷는다 하루의 첫 시간과 마지막 시간 자투리 시간도 거기 바친다 시로 인해 천국을 알며 미혹에도 빠진다 영혼을 앓게 하고 자라게 하는 시 안에서 나는 수녀다 세상일 몰라도 그뿐 주어진 만큼 허기..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