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정숙자 관계 정숙자 녀석을 곰보로 만들었다 흔히 자근자근 깨물었다 총 총 총 잇자국 총 총 총 총 박히곤 했다 4B연필 또는 ‘스테들러(STAEDTLER)’ 펜슬 밑줄 치려면 찾아야 했다. 베개 밑에 끼워두지만 돌아 누워 페이지 넘기는 사이 감쪽같이 숨어버리므로. 읽던 책 가슴에 엎어 놓고 더듬거리..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09
나의 작시전(作詩戰)/ 정숙자 나의 작시전(作詩戰) 정숙자 내면이 정글이다 내면을 장악한 게 고통이라면 나는 그 놈을 사냥할 것이다 관찰 해부 소화할 것이다 태양은 구름장 지우며 돌고 나는 바람 맞으며 탄다 모든 생명은 태양의 사리이리라 종이 위 낱낱 시어는 누군가의 심장을 말린 구슬이리라 눈물 통통 살 오..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08
나의 작시도(作詩道)/ 정숙자 나의 작시도(作詩道) 정숙자 평범은 치명적이지 평범할 바에야 안 쓰는 게 나을지 몰라 발은 현실에 머리는 공중에 매달지 않았어? 하느님께서 그 속에 깃털을 넣어두지 않았는가 말야 평범의 뒤쪽 혹은 옆쪽을 보기 위해 사물 아닌, 사물이 지닌 원자를 찾기 위해 지새워야 해 더 분석할 ..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07
쓰쓰가무시병/ 정숙자 쓰쓰가무시병* 정숙자 쓸쓸함A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식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쓸쓸함A는 처음부터 쓸쓸함A였을 리 없다 쓸쓸함A를 어딘가에 내버린다면 지구 한 귀퉁이 검어질 것이다 쓸쓸함A를 묻을 곳이란 내 가슴뿐, 거기 쓸쓸함A가 쌓이고 쌓여 섬을 이루면 꽃씨가 날아와 움틀..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07
속도와 공기의 저항/ 정숙자 속도와 공기의 저항 정숙자 대기권이 직선으로 찢어진다 그 소리 그 빛 그 집념은 떠돌이 알바트로스의 날개, 구태의연을 건드린 학설 ‘X’ 더하기 속도〓철학적 사유의 유목민들에게 지진과 해 일을 일으킨다 골목과 어둠을 지나 절망까지를 짓씹게 한다 속도는 어디서 꽂히는 걸까 ..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03
임바밍(Embalming)*/ 정숙자 임바밍(Embalming)* 정숙자 스스로 일으키지 않으면 아무도 세워줄 수 없는 그, 의욕 안에서 스스로 타오르지 않으면 어디서도 꾸어올 수 없는 그, 의지 쪽에서 설핏 어둠을 떨쳐 암암리 순간순간 타깃이 되기도 하는 그, 의의 앞에서 선전포고 없이도 전쟁은 벌어진다. 변증법에 의해 (늘) 세..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02
역린/ 정숙자 역린 정숙자 1 쓰레기장이 아니라면 이렇게 검을 수 있나 악취가 날 수가 있나 믿을만한 구멍 이다지 귀할 수 있나 2 버러지가 아니라면 우리가 이리도 꿈틀꿈틀할 수가 있나 떨어지고 눌리고 까닭 없이 먹힐 수 있나 거꾸로 매달려야만 날개를 틔울 수 있나 3 농가에 태어난 나는 햇살을 ..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9.01
평론, 시집 속의 화제작/ 유안나 『시산맥』2013-가을호 <시집 속의 화제작> 소소소 정숙자 이슬은 가장 짧은 생애를 살고 가지만 또 끊임없이 살아서 돌아온다. 몸 섞어 낳지 않고 피 풀어 다투지 않으며 억만년 을 넘기면서도 얼룩 한 점 남기지 않는다. 동글게) 맑게) 따 뜻하게) 이 셋이면 능히 부끄러움 면할 수 있..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8.30
연산_검산/ 정숙자 연산/검산 정숙자 과학자가 빛의 속도를 말할 때 철학자는 생각의 속도를 말한다 철학자가 생각의 속도를 말할 때 시인은 상상/환상의 속도를 말한다 ∴ 시인은 가장 빠른 자이다 시집 한 권을 읽는 동안 독자는 필자의 신민이 된다 신민은 필자에게 푹 빠진다 어법에 생각에 상상/환상의..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8.30
식장(食葬)/ 정숙자 식장(食葬) 정숙자 공동묘지 무섭다 마라 우리네 뱃속은 그보다 서늘한 협곡이니 척추를 깔고 잠드는 짐승 어디 있는가 새는 앉아서, 말은 서서, 개 고양이 나비조차 꼬부리거나 매달려 잔다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 잠정적으로 달리는 것이다 천적 말고도 온갖 목숨 들이킨 인간만.. 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2013.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