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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외 1편/ 송은숙

틈 외 1편      송은숙    공원의 소로를 따라 심어진 호랑가시나무  빽빽한 울타리 사이에는 군데군데 틈이 있다  꼭 나무 한 그루 빠진 자리다 벌어진 잇새처럼,   잇새로는 스,스,스,스 발음이 새 나가고  나무 틈으로는 마주 오던 사람이 주춤거리더니 몸을 비켜 빠져나간다  어깨를 부딪힐 일 없이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니   나는 틈으로 사라지는 새를 본 적이 있다  깃털 하나와 명랑한 울음 혹은 노래만 남았다  이 겨울에 저리 밝게 울 수 있다니   회개한 거인의 정원처럼 울타리 저쪽은 이미 봄일 수도  나비 날개에 노란 물이 묻어날 수도   틈을 빠져나가는 개를 본 적도 있다  하얀 개의 뒷다리와 엉덩이와 꼬리가  이승의 나뭇가지에 걸린 연처럼 호랑가시나무 진초록 잎에 걸려 있었다   머리..

개옻나무 저 혼자 붉어/ 송은숙

개옻나무 저 혼자 붉어      송은숙    지난봄 숲을 지나온 뒤 우리는 개옻나무의 덫에 걸렸다 혀 밑에 감추어 둔 맹독의 세침에 팔뚝에 붉은 물집이 잡히고 심장의 안쪽이 미친 듯이 가려워질 때 우리는 한숨을 쉬며 저주를 퍼붓고 옻의 귀는 확대경이 불씨를 모으듯 말의 씨앗을 모아 두었다   맨발의 파발꾼이 다급하게 전하는 어떤 밀서를 받았는지 개옻나무 혼자 붉다 벌린 입으로 숨겨 둔 말이 발아하고 수많은 혀가 발화發火한다 발화점을 넘은 말의 덩어리들이 개옻나무에 걸려 있다 독설의 덫에 개옻나무 온몸이 가렵다    아직 엽록에 잠겨 있는 관목 숲  금기의 신목神木인 양 아무도 다가가지 않는다 개옻나무  저 혼자 붉다  저 혼자 발화發話한다     -전문-   해설> 한 문장: 멈춰 선 시인, "개옻나무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