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시집 · 뿌리 깊은 달

나의 작시학(作詩學)/ 정숙자

검지 정숙자 2013. 9. 29. 20:53

 

 

     나의 작시학(作詩學)

 

      정숙자

 

 

   상상력 꼽치는 데 왕도는 없다 봉투 만든다

   ‘헌 종이에 생명을’ 부여하는 일, 죄 아니다 봉투 만든다

   부쳐온 책 봉투는 다시 책 봉투

   각양각색 이면지/파지로는 A4용지

   넘어간 달력으로는 네 귀의 합 360°짜리

   편지 담을 봉투 만든다

 

   칼 풀 자 판지, 이들은 또 한 벌의 내 문방사우

   뒤집고 붙이고 반듯반듯 잘라 봉투 만든다

   글쓴다 애쓴다 마당쓴다 모자쓴다 돈쓴다 휩쓴다 이 많은

   쓴다 뒤에서 만들어 쓴다가 제일 맑다

 

   읽어도 읽어도 다 못 읽을 책, 지어도 지어도 다 못 지을 시

   바람에게 맡기고 봉투 만든다 없는 시간 뚝 떼어 봉투 만든

 

   봉투 하나 만들면 봉투 하나만큼의 성취

   편지 한 통 부치면 편지 한 통만큼의 소통

   이런 공기가 곧 시다 봉투 만든다

   따뜻한 공기의 입자들에게 국으로 배운다 봉투 만든다

   상상력에 왕도는 없다 네 귀의 합 360°짜리

   햇빛 담을 봉투 만든다  

      -『문학나무』2007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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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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