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의 각(角)
정숙자
닳아지면 둥글어지고 둥글어지면 다시 깨졌다
늘 새로운 각이 솟았다
웅크리고 깨지고 죽고 죽어 다시 굴렀다
영원히 태어나지 않아도 좋을 소멸에 이르는 길은 온전히
몸 벗는 일
바위를 벗고 돌을 벗고 최후의 각마저 벗고 낙타가 차올리
는 발자국마다 송이송이 돌아가는 흙먼지들아
드디어 날아가는 명사산(鳴沙山) 능선들아
버리는 것은 줄이려는 것
줄이는 것은 벼리자는 것
둘레 40,000km 덩어리째 떠도는 이 행성도 어느 먼 하늘
에서는 별이라 호칭하리라
모난 꽃들, 떠오른 발들, 물소리 삐걱대는 가슴팍들아
완전 마모의 시간을 찾아 나뒹구는 검은 돌들아
-『애지』200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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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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