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행
정숙자
읽은 책과 못 읽은 책. 읽어야 할 책과 읽고 있는 책. 읽을
필요 없는 책과 다시 읽고 싶어지는 책. 내버려야 할 책과 향
기로운 책. 나쁜 책. 놀라운 책. 이미 구한 책과 꼭 사려는
책. 나에게는 아무 상관없는 책. 선물 받은 책. 방향과 모토
가 궁금한 책. 새로 나온 책. 두꺼운 책. 얕은 책. 욕 나오는
책과 고마운 책…….
동서고금 쌓인 책들이 한우충동(汗牛充棟) 빛을 발한다
낡은 책과 매혹적인 책. 엎어놓은 책. 펼쳐진 책. 세워둔
책과 떨어뜨린 책. 빌려 준 책. 찢어진 책. 구겨진 책. 머리
맡의 책과 가방 속의 책. 잃어버린 책. 남의 책. 남의 책이면
서 내 책이 된 책. 구석구석 들쑥날쑥 누워있는 책. 튼튼한
책. 사랑스런 책. 외로운 책. 쓰다듬고 끼고 자는 책. 올올이
새카매 알 수 없는 책…….
장삼이사 이 모든 책들이 먼 먼 책을 깨운다
-『열린시학』2009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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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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