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곡선
정숙자
직선의 한끝은 코너다
직선의 다른 한끝은 삶이며
양 끝이 맞닿은 그 직선은 원으로 복귀한다
발자국과 발자국을 잇는 직선 하나하나가 인생을 그려 나
간다. 고유한, 비슷비슷한 발자국 위로 다른 발자국이 포개
지는 동안 아장아장 세워졌던 최초의 직선들은 꼬부라지거
나 시들거나 온갖 곡률을 경험하며 멀리멀리 돌아나간다.
뻗어 나감에 있어 코너의 섭렵이란 얼마나 값진 수업이었
던가. 그러나 직선은 그 무엇도 다시 체험할 수 없는 코너가
자신의 한끝에 존재한다는 걸 모른 채 뒤로뒤로 발자국 내버
리며 한 발 앞 구름판에 눈길을 모을 뿐이다.
코너에는 보이는 코너와 보이지 않는 코너가 있다. 그중
보이지 않는 코너란 시간과 공간이 반대로 지나가는 교차점
에 위치하며 직선의 처음과 끝이 거기 물려버리는 임계점을
의미한다. 직선의 생존 곡선을 ‘기류’라 해도 좋을까.
떠오르던 비명이 끊어졌다
누군가 낀 것이다
양 끝이 맞닿은 직선 하나가 원으로 복귀한다
-『시작』201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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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뿌리 깊은 달』에서/ 2013. 2. 28. <(주)천년의시작> 펴냄
* 정숙자/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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