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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원_비평집 『탐미의 윤리』에서/ 슬픈 등뼈 : 김윤배

검지 정숙자 2020. 12. 8. 02:44

 

 

    슬픈 등뼈

 

    김윤배

 

 

  가이드는 사파리를 안내하며 읊조리듯 말한다

 

  아프리카 남부 오지로 들어가면 불륜을 저지른 남녀를 말에 매달아 달리게 하는 형벌이 있습니다 추장이 지휘하고 부족 모두가 이 극형 장면을 보게 됩니다 모든 정염이 잿빛으로 변한다는 걸 알았다하더라도 달빛을 꺾었을 남녀입니다 정오가 되면 남녀를 묶어 말에 매답니다 궁사는 말 엉덩이에 화살을 쏩니다 말이 놀라 뛰기 시작합니다

 

  말은 밤이 되어서야 마을로 돌아옵니다

  돌아온 말의 로프에는 남녀의 등뼈가 매달려 있습니다

  밀림은 검게 빛나고 별들 광활한 어둠 속으로 숨습니다

  달빛은 등뼈를 희미하게 비춥니다  

  등뼈에는 안타까운 비명, 푸르게 빛납니다.

  무거운 적막 흐릅니다

 

  훼절되는 관절의 어느 지점에서 서로의 눈빛을 잃고, 목소리를 잃었는지

     -전문-

 

 

  역류의 사랑, 절대의 사랑_김윤배의 시집(발췌)_ 이숭원/ 문학평론가 

  사회의 금기를 어기고 불륜의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도 판단력이 있기에 자신들의 사랑이 타인의 지탄을 받으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사랑의 마력에 매혹된 사람은 불타는 열정으로 인해 사회적 형벌에 대한 공포도 사소하게 여긴다. 유사 이래 불륜남녀를 처벌하는 방식이 다양한 형태로 전해 오는 것은 태초로부터 불륜의 사랑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어떠한 외부의 압력에도 멈출 수 없는 사랑의 열정은 사회의 윤리적 통제를 무화시킨다. 불륜에 가하는 형벌이 아무리 끔찍해도 사랑에 빠진 사람은 사회의 금기를 넘어서게 되어 있다. 이것이 인류 역사에 길이 전하는 사랑의 모순률이다.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 중 남부 오지에서 불륜 남녀를 처벌하는 이야기를 안내원에게 들었다. 인문학적 교양의 영향을 받지 않은 지역이기 때문에 인간의 원초적 행동이 오히려 원형대로 보존되었을 수 있다. 아프리카 오지의 형벌은 불륜 남녀의 육신을 철저히 훼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불륜 남녀의 알몸을 말에 매달아 놓고 햇빛이 날카롭게 반사하는 정오에 말 엉덩이에 화살을 쏜다. 놀란 말은 전속력으로 달린다. 들판과 밀림을 달리던 말은 밤이 되어서야 마을로 돌아온다. 말 뒤에 매달린 남녀의 육신은 온갖 물체에 부딪치고 깨어져 등뼈만 남은 상태로 걸려 있다. 참으로 잔인하고 참혹한 장면이다. 이 끔찍한 장면에 밀림과 별들도 숨을 죽이고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잔혹한 형벌은 참담한 침묵으로 끝난다. 그 마을 사람들은 왜 이렇게 끔찍한 방법을 선택했을까? 불붙은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미치게 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빛 아래 등뼈로만 남은 그 남녀는 이러한 형벌을 몰라서 사랑을 나누었던가? 대대로 전해오는 이 무서운 형벌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극형의 준엄함을 알면서도 그들은 사랑의 마약에 탐닉한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순간마다 죽어도 좋다는 극한의 희열이 두 사람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그렇게 사랑에 빠졌던 남녀가 말에 매달려 사지가 뜯겨나갈 때 후회가 있었을까? 사랑의 절정을 체험했다면 후회가 없었을 것이다. 영혼과 육체를 바쳐 사랑에 투신했는데 이 허망한 세상에 무슨 미련이 남겠는가? 시인은 묻는다. "훼절되는 관절의 어느 지점에서 서로의 눈빛을 잃고, 목소리를 잃었는지" 라고. 인지의 마지막 순간까지 상대의 고통을 걱정하며 눈빛과 목소리를 확인했을 그 남녀, 최후의 순간은 어떠했을까? 절대의 사랑이 극한의 고통으로 바뀌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p. 시 159/ 론 159-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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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숭원 문학비평집 『탐미의 윤리』에서/ 2020. 11. 5. <발견> 펴냄

  * 이숭원李崇源/ 1955년 서울 출생, 1986년 평론 부문 등단, 저서 『정지용 시의 심층적 탐구』 『초록의 시학을 위하여』 『김종삼의 시를 찾아서』 『몰입의 잔상』 외 다수, 현 서울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