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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숭원_비평집 『탐미의 윤리』에서/ 고절(枯絶) : 조정권

검지 정숙자 2020. 12. 8. 01:40

 

 

    고절枯絶

 

    조정권

 

 

  꼿꼿합니다.

  꽃 떨구고 고개 쳐든

  꽃대들이 가을 내내 여위다가

  설한풍 속에서도

  안 숙입니다.

  언 연못

  말라 가도

  숙이지 않는

  저 꼿꼿한 고개

  얼음 속에서 산 채로 캐

  시 쓰는 책상 앞에 켜놓으면

  얼마나 환하겠습니까.

     -전문-

 

 

  견인의 탐미주의, 그 결빙의 여정_조정권의 시세계(발췌)_ 이숭원/ 문학평론가 

  내용은 단순하다. 나는 이 시가 평생을 고절孤節의 탐미주의로 보낸 시인이 생의 한 고비인 고절枯絶의 단계에서 후배 시인에게 주는 당부의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혼탁 속에 빙산 철벽을 꿈꾸는 시를 썼고, 그 꿈이 누더기 같은 현실 속에 좌절될 때, 꽃잎 떨군 꽃대가 말라가면서도 여전히 꼿꼿한 모습을 보이듯, 견인의 자세만은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탐미의 길이 실패하더라도 견인의 자세는 유지해야 하며, 완전한 결빙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살얼음의 그윽한 빛남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으로 나는 이 시를 받아들인다. 그러한 교훈과 훈시의 뜻으로 이 시를 간직하고 싶다. 그것이 자신의 생을 바쳐 예술의 절대 경지를 추구한 이 구도 시인에게 표명할 하나의 예도禮度가 아닐 것인가. (p. 시 32-33/ 론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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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숭원 문학비평집 『탐미의 윤리』에서/ 2020. 11. 5. <발견> 펴냄

  * 이숭원李崇源/ 1955년 서울 출생, 1986년 평론 부문 등단, 저서 『서정시의 힘과 아름다움』 『폐허 속의 축복』 『미당과의 만남』 『몰입의 잔상』 외 다수, 현 서울여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