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이찬규_감옥, 하느님, ...어머니들(발췌)/ 오 나의 하느님, 당신께선 : 베를렌

검지 정숙자 2020. 10. 18. 21:13

 

 

    오 나의 하느님, 당신께선

 

     베를렌(Paul-Marie Verlaine 1844-1896, 52세)

 

 

  오 나의 하느님, 당신께선 사랑으로 저를 다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상처 아직도 생생히 느껴지니,

  오 나의 하느님, 당신께선 사랑으로 저를 다치게 하셨습니다

 

  오 나의 하느님, 당신의 걱정하심이 제게 벼락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거기 불에 데인 곳에는 아직도 천둥이 치니,

  오 나의 하느님, 당신의 걱정하심이 제게 벼락을 내리셨습니다.

 

  오 나의 하느님, 저는 모든 것이 하찮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영광 제 안에 자리했으니,

  오 나의 하느님, 저는 모든 것이 하찮음을 알았습니다.

 

  당신의 포도주 흘러내림 속에 저의 영혼 잠기게 하소서,

  당신 성단 위 빵에 저의 생명 녹아들게 하소서,

  당신의 포도주 흘러내림 속에 저의 영혼 잠기게 하소서.

 

  아직 쏟아내지 아니한 저의 피가 여기 있습니다,

  고통받을 가치조차 없는 저의 살이 여기 있습니다,

  아직 쏟아내지 아니한 저의 피가 여기 있습니다.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었던 저의 이마가 여기 있습니다,

  경배받는 당신의 발 올려놓으실 받침으로도,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는 저의 이마가 여기 있습니다.

 

  수고하지 아니한 저의 손이 여기 있습니다,

  잉걸불 태우고 귀한 향 사르기 위해,

  수고하지 아니한 저의 손이 여기 있습니다.

  (···)

 

  당신 평화와 기쁨 그리고 행복의 하느님이시여,

  저의 온갖 두려움, 저의 온갖 무지함을,

  당신, 평화와 기쁨 그리고 행복의 하느님이시여,

 

  당신께선 아십니다, 이 모든 것을, 이 모든 것을,

  그리고 그 누구보다 제가 가난함을,

  당신께선 아십니다, 이 모든 것을, 이 모든 것을,

 

  하지만 제 가진 것을, 나의 하느님, 당신께 바칩니다. 

     -전문-

 

 

  감옥, 하느님, 그리고 시인의 어머니들(발췌)_이찬규/ 시인 · 문학평론가 

  베를렌이 수감되자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4-1891, 37세)는 그의 고향 샤를빌로 돌아왔다. 마침 점심시간 때 집에 도착했다. 가족들은 오랜만에 모두 모여 식사를 했다. 랭보는 음식을 입에 대는 대신 물끄러미 식탁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의 입에서는 "오 베를렌, 베를렌······"이라는 소리가 긴 탄식과 함께 흘러나왔다. 누이동생 이자벨 랭보는 그의 식사시간을 또렷이 기억했다. 그녀의 증언에 따르면, 랭보는 샤를빌에 머무는 동안 다락방에 올라가 『지옥에서의 한철』을 계속해서 쓰기 시작했다. 누이동생은 다락방에서 이어지는 긴 탄식과 흐느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탄식과 흐느낌은 회한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시의 구절마다 감정을 안배하고 제어하려는 그의 초극적인 노력으로 새어 나왔다. 시는 회한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랭보의 가장 중요한 연구가 중의 하나인 클로드 장 콜라는 이렇게 언급한다: "그것은 미쳤거나 망상적인 정신착란자의 작품 같지만, 그것보다 더 잘 제어된 작품은 없다. 묵시록적 공포 속에서, 감동, 미움, 매혹, 고통의 뒤죽박죽 속에서 각 단어는 신중하게 검토되었고, 각 문장은 치밀하게 계획되었으며, 어쩔 수 없이 따라 하는 듯한 어색함은 전혀 없다. (······) 음색, 리듬, 숨 가쁘고 강렬한 문장, 맥락의 제거, 단어의 기묘한 조합, 어조와 감정의 갑작스러운 변화,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강하게 기억되는 이미지와 상징들의 분출······ 이 산문의 모든 요소들은 시의 재료가 되며, 텍스트의 저주의 힘에, 텍스트의 기묘한 아름다움에 기여한다." 그가 다락방에서 내려올 때면, 그녀는 나이가 들었다기보다는 갑자기 늙어버린 그의 모습에 놀라곤 했다. 랭보는 고향에서 『지옥에서의 한철』을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 마지막 시편이 『이별(Adien)』이다."온갖 축제들을, 온갖 승리들을, 온갖 극들을창조"했던 그 찬란했던 여름도 지나갔다. 하지만 이별은 또한 새로운 영토와 새로운 능력의 시작이 된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믿는다. (p. 시 143-144/ 론 145-146)

 

 

  * 블로그주 : 여기에 다 싣지 못한 해설과 원문은 책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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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청춘2020-가을호 <아르튀르 랭보, 태양의 편지⑨> 에서

  * 이찬규/ 1966년 서울 출생, 『시문학』으로 시 부문 & 『작가세계』로 문학평론 부문 등단, 저서 『횡단하는 문화, 랭보에서 김환기로』 『불온한 문화, 프랑스 시인은 찾아서』 『글쓰기란 무엇인가』등, 공저 『시티컬처 노믹스』 『프랑스 문화예술, 악의 꽃에서 샤넬 n5까지』등, 그 외 다수의 프랑스 문학 작품을 번역했음, 성균관대학교 불어물문학과 졸업, 프랑스 리옹2대학에서 문예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숭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