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일기/ 블레즈 상드라르 : 이병애 옮김

검지 정숙자 2020. 10. 12. 20:20

 

 

    일기

 

    블레즈 상드라르/ 이병애 옮김

 

 

  주님,

  저의 마지막 끝에서 두 번째 시 부활절을 쓴 이후로

  당신을 더이상 생각하지 않은 지 일 년이 넘었습니다.

  그 후 제 삶은 많이 변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저는 마찬가지로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여기 제가 그린 그림들이 있습니다. 오늘 저녁 벽에 걸릴 거예요.

  이 그림들은 제게 당신을 생각나게 하고

  저 자신에 대해 낯선 시야를 열어주었습니다.

 

  주님,

  여기

  제가 발굴해 놓은 삶이 있습니다.

 

  제 그림들은 저를 아프게 해요.

  저는 너무 열정적입니다.

  모든 것이 오렌지빛입니다.

 

  제 친구들을 생각하고

  일기를 쓰느라

  슬픈 하루를 보냈습니다.

  주님.

      -전문-

 

 

   * 잉걸불이라는 뜻의 '브레즈'와 재를 뜻하는 '상드르'가 결합된 이름을 지어내면서 그는 스스로가 신인류의 시조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여행이 보편화되고 정보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공간의 제약을 별로 받지 않는 21세기형 유목민이 등장한 오늘날의 눈으로 볼 때 비록 디지털 기기 대신 책을 끼고 들아다니긴 했지만 이 나라 저 나라를 옮겨 다니며 새로운 문명과 삶에 뛰어들었던 상드라르는 원조 글로벌 시인이라고 말한 만하다. (p. 267)

 

 

  원조 글로벌 시인, 블레즈 살드라르의 여행과 모험/ 코스모폴리탄의 탄생(발췌)_ 이병애/ 불문학자 

  20세게 초의 프랑스 시인, 블레즈 상드라르(Blaise Cendrars 1887-1961, 74세). 본명은 프레데릭 소제(Frederic Sauser). 스위스인 아버지와 스코틀랜드인 어머니 사이에서 스위스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출생 당시 아버지가 이집트에 체류 중이었으므로 아버지와 합류하기 위해 태어난 지 닷새 만에 이집트로 여행하였다. 부모를 따라 영국, 이탈리아, 이집트, 스위스에서 생활하였고 이집트인 유모의 보살핌을 받고 독일 학교를 다니며 영국인 가정교사에게 배웠다. 이쯤 되면 그는 코스모폴리탄으로 태어나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p. 시 285/ 론 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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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함께』 2020-가을호 <반항아의 시학 4/ 상드라르 대표 시선> 中

    * 이병애/ 서울대 대학원 불문과 문학박사, 목원대 · 외대 · 서울대 강사 역임, 번역서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피아제 교육론』 『철학편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