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W. H. 오든(Wystan Hugh Auden 1907-1973, 66세)
고통에 관해 그들의 생각은 틀린 적이 없지요,
옛날의 거장들 말입니다. 그들은 인간의 삶에서 고통이 차지하는 자리를
환하게 알았죠. 다른 사람이 식사를 하거나 창문을 열거나
그냥 멍하니 걷고 있을 때에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찾아오는 것도.
나이든 이들이 경건하게, 열정적인 마음으로
새 생명의 탄생이라는 기적을 기다릴 때 말입니다,
숲의 가장자리 연못에서 스케이트를 지칠 뿐
그런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따로 없는 아이들이 항상 있게 마련이지요.
옛날의 거장들은 잊은 적이 없지요,
아무리 끔찍한 순교라 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리라는 것을,
세상 한 구석, 어딘가 불결한 곳에서,
개들이 개의 삶을 이어가고, 고문관의 말이 가렵다 하여
죄 없는 엉덩이를 나무에 비벼대는 바로 그곳에서.
예컨대, 브뤼겔의 그림 '이카루스'에서 말입니다, 세상만사가
참회에서 아주 한가롭게 눈길을 돌립니다. 농부는 아마도
풍덩 소리를, 절망의 외침소리를 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에게 그건 중대한 사건이 아니었죠. 해는
항상 그래 왔듯 푸른 물속으로 사라지는 하얀 다리를 비췄을 겁니다.
그리고 값나가는 정교한 배는 무언가 놀라운 일을,
하늘에서 소년이 떨어지는 것을 틀림없이 목격했겠지만,
어딘가 가야 할 곳이 있었기에 조용히 항해를 계속했을 겁니다.
-전문-
▶'교감'의 시와 '공감'의 삶을 위하여(발췌)_장경렬/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두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제1연에서 시인은 인간이 살아가며 느낄 법한 "고통"을 화제로 올린다. 이어서 그는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무심한가를 "옛날의 거장들"의 그림을 통해 확인한다. 먼저 제1연의 제3-8행에서 시인의 눈길이 향하는 것은 아버지 브뤼겔(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이름의 화가였으므로 大피터르 브뤼겔과 小피터르 브뤼겔로 구분함/블로거 첨언)의 그림 「베들레헴에서의 인구 조사」다. 겨울철 풍경이 담긴 이 그림의 배경은 플랑드르 지방의 한 마을로, 그림 속에는 성경 속의 이야기(누가복음 제2장 제1-5절)에 나오는 요셉과 마리아가 등장한다. 즉, 인구 조사를 위해 베들레헴에 도착한 요셉과 예수를 잉태한 마리아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다. (화가가 겨울철 풍경을 그림에 담은 것은 예수의 탄생일이 12월 25일로 공식화되어 있음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리라.) 아무튼, 오든의 눈에는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말든 식사를 하거나 창문을 열거나 멍하니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그림에는 저마다의 일에 바쁜 사람들의 모습이, 심지어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지만 얼음판 위에서 썰매를 갖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바로 이 그림을 보며 시인은 생각에 잠긴다. 세상에는 아기 예수의 탄생이라는 기적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처럼 경이롭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든 말든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일에 분주한 사람들과 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들이 있는 법이다. (p. 시 128-129/ 론 129-130)
* 블로그주 : 여기에 다 수록하지 못한 해설과 원문은 책에서 일독 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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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청춘』2020-가을호 <영미시산책 11> 에서
* 장경렬/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학교 영문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영문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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