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은 닫힌 문이다 외 1편
찰스 부코스키 : 황소연 옮김
배를 곯고 살 때도
나는 출판사의 거절 통지에 개의치 않았다
편집자들이 참 멍청하구나
생각하고는
계속 글을 쓰고 또
썼다.
그래도 그렇게 행동으로 거절해 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최악은 텅 빈
우편함이었다.
마음이 약해지거나 기대를 한 적이
있었다면
거절한 편집자를 한번
만나 보고 싶은
정도랄까.
남자든 여자든 그 사람의 얼굴
차림새, 방을 건너오는
걸음걸이, 목소리
눈에 담긴 표정을 보고 싶었다······
딱 한 사람만이라도
딱 한 번만이라도.
알다시피
눈에 보이는 거라고는
나를 변변찮다 말하는
종이 한 장뿐이라면
편집자를
신의 반열에 오른
존재로 생각하기
십상이다.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배를 곯을 때는
지옥은 닫힌 문이다
가끔 문 열쇠 구멍으로
그 너머가 얼핏
보이는
젊든 늙었든, 선량하든 악하든
작가만큼
서서히 힘겹게 죽어 가는 것은
없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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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작가가 되려고 인내해야 했던 것들을
생각해 본다. 여러 도시의 방들,
쥐도 아사할
음식 찌꺼기로
연명하던 일.
피골이 상접해 어깨뼈로 빵도 자를
지경인데 자를 빵이 있어야
말이지······
그 와중에도 종이에
끄적이고 또
끄적였다.
여기서 저기로 이사를
할 때면
마분지 여행 가방 하나면
족했다. 겉도 종이요 안에 든 것도
종이.
집주인 여자들은 하나같이
같은 걸 물었다. "무슨 일
하세요?"
"작가입니다."
"어머나······"
글발을 세워 보겠다고 콧구멍만 한
방 안에 틀어박히면
많은 이들이 딱하게 여기며
사과, 호두, 복숭아 같은 간식거리를
주었다······
내가 먹는 거라곤
그게 전부일 거라는
생각은
못했겠지.
하지만 내 방에서 싸구려 와인 병들이
발각되는 순간 그들의 연민은
사라졌다.
배고픈 작가는
괜찮이도
배고픈 작가가 술을 마시는 건
괜찮지 않았다.
술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았다.
세상이 순식간에 옥죄어
올 때
와인 한 병은 꽤 쓸 만한 친구가
되는데도.
아. 그 집주인 여자들
대부분 뚱뚱하고 느렸고 남편은
오래전에 죽고 없었다.
그 여자들이 자신의 왕국 계단을
오르내리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선하다.
그들은 내 존재를 지배했다.
방세가 일주일만 밀려도
들들 볶아 대서
가끔은
거리에서 지내야
했는데
거리에서는
글을 쓸 수 없었다.
방 하나, 문 하나, 벽들을
갖추는 게
몹시
중요했다.
아, 그 침대에서 맞이한
암울한 아침들.
그들의 발소리에 귀를 세우고
그들의 기침 소리에 귀를 세우고
그들이 변기 물 내리는 소리를
듣고, 그들이 요리하는 냄새를
맡으며
뉴욕시와 세상에 선보일
글 몇 줄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바깥 세상에 계시는
배우고 똑똑하고 고상하고
끼리끼리 교배하고 격식을 따지고
팔자 늘어진 분들에게
선보일 글이었다.
거절을 할 때도
뜸을 들이는 분들이지.
그래, 그 암울한 침대에서
집주인 여자가 부스럭대고
딸그락대고 기웃대고 칼날 가는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나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내가 하려는 말을
알아주지 않는
바깥 세상 편집자들과
출판업자들이
종종 떠올랐다.
그들이 틀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몹시 뼈아픈
생각이 뒤를
따랐다
내가 바보일지
모른다는.
작가라면 거의 누구나
자기 글이 특별하다고
생각한다는.
그것은
흔한 일이다.
바보가 되는 건
흔한 일이다.
그 순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종이를
찾아
다시
쓰기
시작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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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1판 1쇄 2019. 2. 22. & 1판 4쇄 2020. 5. 6. <민음사> 펴냄
* 찰스 부코스키(Charles Bukowski, 1920-1944, 74세) 현대 미국과 유럽 문단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 시인이자 소설가. 미군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하여 로스앤젤레스에서 성장했는데, 아버지의 잦은 구타로 인한 고통을 덜기 위해 열세 살 때부터 술을 마셨다고 한다. 엄청난 독서가였고, 오랫동안 하급 노동자로 일하며 미국 전역을 유랑했다. 심각한 궤양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생환한 후인 서른다섯 살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우체국 직원으로 일하면서 틈틈이 시와 칼럼을 잡지와 신문에 발표했다. 1969년 마흔아홉 살에 비로소 '블랙 스패로 프레스'의 제안을 받아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일흔세 살의 나이에 백혈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평생 예순 권이 넘는 소설과 시집, 평론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시집은 사후 출판까지 포함하여 서른세 권에 이른다. 시인이 영향을 받은 작가들 중에는 이백과 두보, 헨리 밀러, D. H 로렌스, 도스토예프스키, 알베르 카뮈, 크누트 함순,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이 있다. 또 영화감독 장뤼크 고다르, 마르코 페레리, 록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 등의 사랑을 받았으며, 미국에서 그의 책들은 서점에서 가장 많이 도난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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