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시

신원철_ 악마적 상상력(발췌)/ 까마귀의 첫 수업 : 테드 휴즈

검지 정숙자 2020. 10. 12. 22:01

 

 

    까마귀의 첫 수업

 

    테드 휴즈(1930-1998, 68세)

 

 

  하느님이 까마귀에게 말하는 법을 가르치려고 했다.

  "사랑" 하느님이 말했다. "사랑 해 봐."

  까마귀가 입을 쩍 벌렸다. 흰 상어 한 마리가 바다로 뛰어들더니

  몸을 비틀면서 아래로 내려가, 그것의 깊이를 찾았다.

 

  "아니야, 아니야" 하느님이 말했다. "사랑이라고 말해. 자 말해 봐 사랑."

  까마귀가 입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청동파리 한 마리, 체체파리, 모기 한 마리가

  윙 날아와 내려앉았다

  햇살 아래 그들의 (썩고 있는) 살덩어리에게로

 

  "마지막으로 해 봐." 하느님이 말했다. "자, 사랑."

  까마귀가 몸을 꼬더니, 헐떡이다가 토해냈다 그리고

  몸통 없는 남자의 거대한 머리통이

  불쑥 튀어나와 땅 위에 떨어졌다, 눈깔을 희번덕거리며,

  반항을 지껄이면서- -

 

  그리고 까마귀는 하느님이 말릴 사이도 없이 다시 토했다.

  여자의 생식기가 남자의 목 위로 떨어지더니 조이기 시작했다.

  그 둘은 풀밭 위에서 드잡이를 시작했다.

  하느님은 둘을 떼놓으려고 애를 쓰다가, 욕하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

 

  죄책감을 느꼈는지 까마귀는 날아가 버렸다.

     -전문-

 

 

  ▶악마적 상상력/ 테드 휴즈와 실비아 플라스(발췌) _ 신원철/ 시인, 영문학자

  이 시는 매우 상징적이다. 하느님은 머리 나쁜 까마귀를 어떻게든 가르쳐보려고 하는데 까마귀의 반응은 사랑이라는 말을 따라하는 대신 온갖 지저분하고 피비린내 나는 것들만 토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자의 머리통과 여자의 생식기가 튀어나와서 서로 합친 다음 아무리 떼려고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 원래 암수 양성은 한몸이있다. 그것을 떼어내 부자연스럽게 만들어 놓은 것이 종교가 아닌가. 상대를 향한 갈구를 순화시키고자 하는 것이 바로 하느님이 상징하는 인간의 제도와 종교다. 그러나 이 생명 본래의 갈구는 억지로 떼려고 해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시에서 휴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원초적 생명의 갈구일 것이다. 거기에 지저분한 까마귀가 등장하는 것은 아마 기존 제도나 종교에 대한 휴즈의 반감 때문일 것이다.

  테드 휴즈의 시에서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강인한 에너지이다. 그에게 기존 제도의 도덕이나 질서와 같은 것은 같잖은 것일 수도 있다. 필자가 이 시인을 전공한 것이 아니어서 많은 비평서를 읽어보지는 않았으나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것은 그러한 에너지이다. 그의 동물시에서도 그 에너지에 대한 탄복이 느껴진다. 그리고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여기에는 악마성이 있다. 이것의 근원을 캐들어가자면 헬레니즘까지 가야 한다. 그리스 신화의 시작은 아버지에 대한 저항 내지는 타도이다. 태초에 온 우주가 혼돈상태일 때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스스로 몸을 틀어 거인 우라노스를 만들고 그와 결혼하여 크로노스를 낳았다. 크로노스는 자라나서 아버지인 우라노스의 생식기를 자르는 패륜을 저지르며 권력을 장악한다. 그리고 크로노스도 자기가 한 짓이 있어서인지 자식을 생기는 대로 집어삼키는데 거기서 살아남은 자식 제우스가 나중에 형제들과 힘을 합쳐 아버지를 타도하고 올림푸스의 신국을 연다. 이런 과정은 우리의 유교적 도덕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으며 그야말로 오랑캐적인 사고방식인 것이다. (p. 시 322-323 / 론 32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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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함께』 2020-가을호 <영미시 이야기 4>에서

   * 신원철/ 시인, 영문학자, 시집 『동양하숙』 『노천탁자의 기억』외, 저 『20세기 영미시인 순례-죽은 영웅의 시대를 노래함』 외 다수의 논문, 강원대 글로벌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