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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김_『페리파토스』「안전빵을 거부하라」

검지 정숙자 2020. 5. 26. 02:56

 

 

    안전빵을 거부하라

 

    해리 김(Harry Kim)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빵은

  '안전빵'이다.

 

  이 빵은

  네 영혼을 부패시킨다.

 

  네 영혼이 썩으면

  네 도전정신과 창의력이 고갈되어

 

  너는 평생

  거지근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들아,

  맛없는 풀빵을 먹어도 좋으니

  안전빵은 무조건 거부해라.

   - Harry Kim, 『아들아』, 성안당, 200쪽

 

 

  어제(6월 13일) 오전 고원에 있는 지체들에게 줄 선물로 망고 100개를 사서 차에 싣고 리장을 출발한 우리는 자동차로 네 시간을 달려 고도 3,400미터의 샹그릴라(Shangri-La)에 도착했다.

 

  샹그릴라는 제임스 힐튼이 쓴 『잃어버린 지평(LOst Horizon, 1933)』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가공의 장소이다. 샹그릴라는 소설 속에서 쿤룬(Kunlun)산맥의 저쪽 끝자락에 숨어있는 신비롭고 평화로운 계곡,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고 외부로부터 단절된 유토피아로 묘사되었다. 소설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 말을 지상의 어딘가에 존재하는 낙원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샹그릴라 사람들은 평균적인 수명을 훨씬 뛰어넘어 거의 불사不死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상상에서 우러난 동양에 대한 이국적 호기심을 담고 있다. ······중국정부는 윈난 성의 중덴中甸을 2001년 샹그릴라(Shangri-La)라고 개명하여 국제적인 관광도시로 개발하고 있다.(위키백과)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이곳에는 중국 각 지역에서 온 창업자들과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 그리고 극소수의 외국인 사업가들로 북적이고 있다. 이러한 북적임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바로 안전빵에 집착하는 이들과 안전빵을 거부하는 영적 노마드들이다. 이곳은 거주민 대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창의적 노마드들로 넘쳐나는 곳 둥 하나일 것이다.

  전통적으로 노마드란 '중앙아시아나 몽골, 사하라 사막 지역에서 가축에게 먹일 물과 풀밭을 찾아 주기적으로 유랑하는 부족'을 말하지만 오늘날에는 여러 유형의 노마드가 있다.

 

 

  1) 일자리 노마드(Job nomad)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볼 때, 일자리를 찾아 지구의 서쪽(후진국)에서 동쪽(선진국)으로 움직이는 단순노동자가 대부분이다.

 

  2) 전문직 노마드(professional nomad)

  자신들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이동하여 일자리 노마드들이 상상할 수 없는 고액을 받고 일하는 이들이다. 일자리 노마드들과는 반대로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옮겨진다.

 

  3)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스마트폰, 노트북 등의 각종 디지털 장비로 무장한 채 자유로운 공간에서 일하는 이들이다. 시스템에 속한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과감히 포기하고, 여행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면서 일하는 프리랜서 노마드이다.

 

  4) 프로랜서 노마드(Prolancer nomad)

  시스템의 통제를 받고 일하는 일자리 노마드의 전문직 노마드와는 다른 프리랜서로서 직접 시스템을 통제하는 전문가(professional)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한국 축구대표팀을 맡았던 히딩크 감독이 있다.

 

  5) 영적 노마드(Spiritual nomad)

  형이상학적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기존의 시스템을 떠나 새로운 시스템을 찾아 유랑하는 이들이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을 서슴지 않는 탐험가들이다. 모두가 동쪽으로 갈 때 서쪽으로 갔던 콜럼버스처럼 말이다.

 

  6) 사명적 노마드(Missional nomad) 

  영적 노마드들 중에서 새로운 시스템 건설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이들이다.

 

 

  두 아들은 이곳에서 닷새를 머물면서 세상에서 가장 해로운 빵인 '안전빵'을 단호히 거부하고, 맛없는 풀빵을 먹는 한이 있어도 인생을 창의적으로 살고 있는 야성의 노마드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는 두 아들이 이들을 만나 어떻게 대화를 풀어가며, 어떤 말을 경청하는지를 관찰하여 두 아들이 펼쳐 나갈 창의적인 미래에 주저 없이 도전하도록 격려할 예정이다.

  여행은 편협했던 시각을 깨트려 겸손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한다.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되면,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던 창의력이 용솟음치고 창의력을 실행할 수 있는 야성의 불꽃이 점화된다.

  야성은 끝없이 도전하지만 무모하지는 않다. 야성은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역동적인 지성이며, 전략적인 모험이다. 야성은 디지털의 치밀함과 섬세함뿐만 아니라 아날로그의 황당한 모험과 낭만을 같이 가지고 있다. 야성은 황당하리만큼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가도록 해서 자신이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체득하게 해준다. 그런 후 야성은 그보다 더 멀리 갈 것을 꿈꾸고 실행에 옮기게 한다.

  진정한 야성은 우리 안의 신실함을 되찾아 어두운 세상에 신실함의 빛을 비추는 것이다. 참 야성은 자신의 몸을 불살라 어두운 곳에 빛으로 다가가는 삶이며 죄악의 세상에서 소금처럼 자신을 녹여 부패를 막는 삶이다. 이것이 야성의 진면목이다.

  나는 두 아들에게 '착해라', '공부 잘해라', '예의 바르라' 등의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다. 두 아들에게 늘 해준 이야기는 "무슨 일이든 창의적인 콘셉트를 잡고 이것을 이루기 위한 삶에 전략적으로 집중하라."이다.

  사람이 주는 음식에 길들여진 야생동물은 더 이상 야생에서 살아갈 수 없다. 먹이를 구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해서 안전빵을 주는 것은 오히려 자녀를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창의적인 이들이 야성을 상실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자녀들이 안전빵에 중독되어 틀에 박힌 일이 주는 따분함을 받아들이는 삶을 살게 하기보다는, 쉰 빵을 먹더라도 안정이라는 궤도를 이탈하여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저지르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참사명이다. 깨어있는 부모라면 자녀가 기존의 시스템 안에서 안전빵을 먹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이는 시스템 안으로 도피케 하는 것이다.

  인간이 부패한 자아를 감추기 위해 몸부림 친 역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도피'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다양한 도피를 즐겨왔다. 그중에 시스템으로의 도피가 있다. 모든 것이 완비     구축된 시스템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스템 속에 갇혀 있으면 도전정신도, 개척정신도, 야성도 상실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은 오로지 시스템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 안에서 지위가 높아지는 것에만 집착한다.

  시스템에 안주하는 사람들은 서서히 끓어오르는 주전자 속에서 죽음이 임박한지도 모르고 헤엄치는 개구리와 같다. 우리는 야성이 타성으로, 창조성이 모방으로 변질되는 시스템 속의 삶을 경계해야 한다.

  더불어 우리가 속한 모든 시스템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국가, 사회, 학교, 교회, 직장, 가정······ 이것들이 우리에게 안전제공을 빌미로 도전정신과 야성을 사장시키고 있다면 이를 거부해야 한다.

  참으로 깨어있는 부모라면 자녀를 시스템 밖을 개척하는 사명적 노마드가 되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보모는 안정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거부할 수 있는 결단력을 자녀에게 심어주어야 한다.*

 

  * "소위  하위 직종에서 시키는 대로 틀에 박힌 일을 하는 이들이 상위 직종의 창의적인 일을 하는 이들보다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틀에 박힌 일이 주는 따분함 때문에 고통을 받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기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병에 걸리거나 쇠약해지지 않는다."(디팩 초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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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 김 지음_길이 사라진 시대의 배움과 가르침 『페리파토스PERIPATOS에서/ 2016. 12. 5. <더 메이커> 발행

 * Harry Kim/ 지난 35년간 지구촌 구석구석을 유영遊泳하고 있는 노마드이자 관계학과 공동체론 전문가. 주향한공동체 대표, TW대표, BMA 디렉터, 목회자, 번역가, 저술가, 재즈 마니아, 화가, 강연자, BAM 이론가이자 동시에 사업가이다./ 모두가 동쪽으로 갈 때 단호히 서쪽으로 향했던 저자는 정답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자녀와 부모들에게 길 찾기의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서로 『일터@영성』 『크리스천 사업가와 BAM』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태초에 공동체가 있었다』 『아들아』 등이 있고, 역서로 『BAM』 『환대의 신학』 『갈등과 목회』 『Unde Tom's Cabin』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