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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김_『페리파토스』「독수리는 수영하지 않는다」

검지 정숙자 2020. 5. 23. 17:22

 

 

    독수리는 수영하지 않는다

 

    해리 김(Harry Kim)

 

 

  여행을 하다보면 장기간 여행을 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중에는 일찍 은퇴하여 전 세계를 여행하는 부부도 있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10대 자녀를 데리고 여행하는 가족도 있고, 군대를 제대하거나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여행을 하는 젊은이들도 있고, 여러 이유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뛰쳐나와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유랑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특히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도는 청년들을 많이 만났다. 나는 이들을 만나면 밥을 사주면서 이들의 이야기를 무조건 들어준다. 내 경험상 어떤 이유로든 세상을 떠도는 이들에게는 하고 싶은 얘기가 많고, 이들을 가장 기쁘게 해주는 일은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주는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비엔티안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청년은 남달랐다. 학교를 자퇴했다는 이 청년은 자기 이야기를 조금 하더니, 자기를 위해 좋은 말을 해달라고 청했다. 그래서 오래 전 어느 책에서 읽었던 '동물 왕국의 학교 이야기'를 해주었다.

 

  동물의 왕국은 급변하는 세상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하였다. 달리기, 오르기, 수영, 날기 등으로 커리큘럼을 짜고 모든 동물이 이수하도록 했다.

  수영에 탁월한 오리는 달리기가 엉망이었다. 교사는 오리의 달리기 능력을 키우기 위해 방과 후 학습을 명했고, 오리는 달리기 과목을 패스하기 위해 전력투구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평균 수준으로 통과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달리기에 전념하다보니 자신의 주 종목인 수영 실력이 엉망이 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달리기 국가대표인 토끼는 수영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방과 후 학습을 명받아 열심히 노력한 결과 토끼는 가까스로 수영 과목을 통과했다. 그러나 달리기는 엉망이 되었다.

  나무 타고 오르기의 천재 다람쥐는 달리고, 나는 능력이 없었다. 역시 교사의 방과 후 학습을 명받고 열심히 하여 달리기는 C, 날기는 D를 받아 패스하였다. 허나 그 대가는 치명적이었다. 자신의 장기인 오르기 기능이 퇴화된 것이다.

  교사에겐 독수리 녀석이 가장 골칫거리였다. 달리고, 오르고, 수영을 배우라는 교사의 말에 전혀 응하지 않고 제 마음대로 했다. 교사는 독수리를 학교 부적응자라고 낙인을 찍었다. 독수리는 더 이상 배운다는 것은 자신의 재능과 야성을 파괴하는 짓이라고 생각하여 학교를 그만두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런 식으로 학교를 자퇴하고 하늘 높이 날아올라 세계 PC업계에 대반란을 일으킨 독수리 3인방이 있다. 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하고 마이크로 소프트를 창업한 빌 케이츠와 리드칼리지를 자퇴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 그리고 오스틴 의대를 자퇴한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이다.

  세계적인 갑부 대열에 오른 독수리들도 있다. 하버드 대학교를 휴학하고 페이스북을 창업한 마크 주커버그, 그와 룸베이트로 있다가 페이스북을 공동 창업한 더스틴 모스코비츠, 그리고 역시 하버드를 중퇴하고 마이크로 소프트의 271번째 직원이 되어 현재 억만장자의 대열에 오른 게이브 뉴웰이 있다.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세상의 창공을 향해 날아오른 독수리도 있다. 300개 계열사를 거느린 영국 버진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다.

  이렇게 타인의 성공공식을 배우는 조직인 학교를 중도에 박차고 나와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독수리들이 전 세계 슈퍼리치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1%에 드는 억만장자 네 명 중 한 명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중도에 그만둔 독수리들이란 말이다.(2016년 4월 3일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영국의 마케팅 조사업체 버브서치의 조사 결과를 인용해 전 세계 슈퍼리치 중 25%가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자퇴했다고 전했다. 버브서치는 미 경제지 포브스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 100대 자수성가 부자들의 학력을 조사해 이같이 발표했다.)광활한 세상을 마음껏 날아다니기 위해 학교를 중도에 포기한 이들은 학교를 마친 졸업생들에 비해 극소수일 텐데 이들이 슈퍼리치 중 25%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들 독수리들은 기존 시스템을 박차고 나와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시스템 창시자들이다. 이들의 특징을 잘 표현해주는 단어로는 '엉뚱한 아이디어', '창의력', '조직부적응'(스티브 잡스와 리처드 브랜슨처럼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특징이 있다. 사실 조직에 잘 적응하는 이들에게 창조적인 혁신을 기대하기 어렵다.), '자율성' '유연성'(여기서 '유연성'이란 '한 가지 산업에 고집하지 않고 마구 옮겨 다닌다'는 의미이다.), '도발적 저지름' 등이 있다.

  지금까지 예로 든 이들이 학교를 다니다 중도에 그만두고 세상을 향해 날아오른 독수리들이라면, 아예 학교를 가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언스쿨러(Unschooler) 독수리들도 있다. 이 독수리들은 교사나 정부가 임의로 정한 커리큘럼 대신 스스로 배우고 싶은 것을 찾아 배운다. 대표적인 독수리가 2011년 언칼리지(Uncollege)를 설립하고 스스로에게 '최고교육일탈자'라는 직함을 부여한 스티븐스이다.(알렉사 클레이 외 1인, 185~187쪽) [블로그주: 알렉사 클레이, 키야 마라 필립스 지음 『또라이들의 시대』, 최규민 옮김, 알프레드. 2016.]

 

  나는 긴 이야기를 마치면서 청년에게 말했다.

 

  "나는 청년도 독수리라고 생각하는데······."

  "네, 물론입니다. 아직 방향을 못 잡았을 뿐입니다."

  "좀 더 유랑해보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럴 거라 생각합니다."

 

  아직 제 길을 못 찾은 청년과 헤어지고 호텔로 돌아와보니 두 아들은 수영을 하고 있었다. 수영하는 두 아들의 모습을 아내에게 화상으로 보여주면서 조금 전 카페에서 만났던 청년 얘기를 해주었다.

  나와 아내는 두 아들이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영적 노마드로 시작하여 새로운 시스템 건설에 헌신하는 사명적 노마드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두 아들을 양육했다. 

  영적 노마드와 사명적 노마드는 기존 시스템의 바깥을 개척하여 새로운 시스템을 창시하는 독수리다. 때문에 부모는 우리가 속한 모든 시스템을 냉철하게 분별해야 한다. 국가, 사회, 학교, 직장, 가정이 우리에게 안전을 제공한다는 것을 빌미로 창의력과 도전정신, 그리고 야성을 사장시키려 한다면 부모는 이를 거부하고 자녀를 시스템 밖을 거침없이 날아오르는 독수리가 되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물론 우리 부부가 모든 자녀들이 영적 노마드로 시작하여 사명적 삶을 살아야만 한다고 강조하는 것도 아니고, 영적 노마드로 세상을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학교를 자퇴하거나, 홈스쿨링, 셀프스쿨링, 언스쿨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공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녀들을 무작정 적응하도록 강요하지 말고, 다른 방식의 교육을 제공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애써 제안하는 것이다. 수영 학점을 이수해야만 하는 학교에 독수리를 보내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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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리 김 지음_길이 사라진 시대의 배움과 가르침 『페리파토스PERIPATOS에서/ 2016. 12. 5. <더 메이커> 발행

  * Harry Kim/ 지난 35년간 지구촌 구석구석을 유영遊泳하고 있는 노마드이자 관계학과 공동체론 전문가. 주향한공동체 대표, TW대표, BMA 디렉터, 목회자, 번역가, 저술가, 재즈 마니아, 화가, 강연자, BAM 이론가이자 동시에 사업가이다./ 모두가 동쪽으로 갈 때 단호히 서쪽으로 향했던 저자는 정답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자녀와 부모들에게 길 찾기의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서로 『일터@영성』 『크리스천 사업가와 BAM』 『태초에 관계가 있었다』 『태초에 공동체가 있었다』 『아들아』 등이 있고, 역서로 『BAM』 『환대의 신학』 『갈등과 목회』 『Unde Tom's Cabin』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