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변종태_ 십인십색(十人十色)의 노랫소리(발췌)/ 속상한 일 : 박지웅

검지 정숙자 2020. 1. 16. 16:19

 

 

<2019, 계간『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시 best ten> 中

 

 

    속상한 일

 

    박지웅

 

 

  나무에 소금 먹인다는 말을 들었다

  뿌리들에게 소금자루를 묻어 놓으면

  천천히 독이 퍼지면서 비실비실 말라버린다니

  참 못할 짓이지 싶은데

  마음 구석에 슬쩍 생겨난 소금 한 자루

  자루 입을 몇 번 풀었다가 묶었다

  맹지에 길 내자고 소금자루 메고 가

  산어귀 나무에 흰 고깃덩이를 먹였는데

  기다리는 비 한 방울 없더란다

  걸핏하면 빌고 야심차게 기도하는 것도

  참 몹쓸 짓

  물을 켜도 혓바닥이 비실비실 마르더란다

  가슴 한쪽이 쓰라리더란다

  치워도 꼭 그 자리에 소름 한 자루가 터져

  악독하게 소금을 치더란다   

    -전문, 『주변인과문학』(2018, 겨울)

 

 

  ▶ 십인십색十人十色의 노랫소리(발췌)_ 변종태/ 시인

 올해도 본지에서는 올해의 좋은 시집 두 권과 올해의 좋은 시 10편을 선정하고, 해당 시인들의 동의를 얻어 소개하고, 그들의 시를 통해, 독자(시인)들이 어떤 경향의 시를 선호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P-17) 

 

  박지웅의「속상한 일」은 인간의 관계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가장 제거하기 어려워하는 종류는 억새와 대나무이다. 경작지로 대나무 뿌리가 번지면 제초제를 치고, 다시 소금을 뿌린다. 그러면 대나무는 뿌리까지 말라 죽게 된다. 이와는 달리 인간관계에서 누군가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마음처럼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예는 없다. 나무가 말라 죽는 것처럼 누군가가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하지만 애정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 두 감정은 대상에 대한 '파괴'(배제) 심리가 아니라 '지속'(집착)을 전제로 한다. 그러기에 버릴 수도 없고, 사랑할 수도 없는 양가감정(兩價感情, Ambivalence)을 드러내고 있다.(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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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19-겨울호 <기획특집_2019 올해의 좋은 시/ 총평>에서

  * 박지웅/ 2004년『시와사상』으로 등단 & 2005년《문화일보》신춘문예 당선, 시집『너의 반은 꽃이다』『빈 손가락에 나비가 앉았다』등

  * 변종태/ 시인, 본지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