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변종태_ 십인십색(十人十色)의 노랫소리(발췌)/ 오렌지에게 : 최문자

검지 정숙자 2020. 1. 16. 15:46

 

   

<2019, 계간『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시집 best two> 中

 

 

    오렌지에게

 

    최문자

 

 

  사랑할 때는 서로 오렌지고  싶지

  먼 곳에서 익고  있는

  어금니가 새파란

 

  이미 사랑이 끝난 자들은

  저것이 사랑인가 묻는다

  슬픈 모양으로 생긴 위험하게 생긴 느린 비가 부족해서 파랗게 죽을지도 모르는 저것

  사랑하기에 좋도록 둥근, 바람에 대해 쓰러지기 좋은 죽기에도 좋은 저것

 

  우리는 쓰러지기도 전에 겁이 나서

 

  오렌지는 너무나 굳게 오렌지를 쥐고

  나는 어디에도 없는 나를 쥐고

 

  짐승처럼 나빠지고 싶은 오 두려운 여름, 거짓으로 빚어지는 둥그런 항아리 같은 저것

  저것의 안을 깨뜨리며

  죽었던 여름이 우리를 지나갔다

    -전문,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민음사, 2019)

 

 

 

  ▶ 십인십색十人十色의 노랫소리(발췌)_ 변종태/ 시인

  올해도 본지에서는 올해의 좋은 시집 두 권과 올해의 좋은 시 10편을 선정하고, 해당 시인들의 동의를 얻어 소개하고, 그들의 시를 통해, 독자(시인)들이 어떤 경향의 시를 선호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P-17) 

 

  최문자의『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를  읽다 보면 '성숙'과 '돌아봄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종종 시인의 나이가 들면서 시도 함께 늙어가는 시인들을 보게 된다. 한때 이루어놓은 문명文名을 갉아먹으며 무대의 뒤편으로 사라져가는 시인들을 보면, 문학, 예술에는 과정이 있을 뿐 완성은 없다는 명제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최문자는 시인으로 살아온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의 진실성을 성찰한다. "사과를 사과라고 부르면 사과가 사라진다 노트에 사과라고 적었다 <중략> 사라진 사과들은 이상하게 타인의 무릎 위에서 비 맞은 흙 속에서, 혹은 북유럽 관목 숲에서 쏟아지는 눈 속에서 찾아냈다"(「부화」에서)/ 우리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과 언어는 둘 다 변하지 않는다. '사과'(사물)는 '사과'(언어)라고 불리지만, 사물과 언어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 사물과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는 같은 것이라 여긴다. 그래서 "언어는 사물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시인은 사물과 관념과의 불일치 또는 구별을 의식하고 있다. 구체적 사물도 이러할진대, 추상적인 감정의 경우는 그 괴리가 더욱 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언어에 대한 고찰이 시집 전체에 깔려 있다.(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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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19-겨울호 <기획특집_2019 올해의 좋은 시집/ 총평>에서

  * 최문자/ 1982년『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사과 사이사이 새』『파의 목소리』등

  * 변종태/ 시인, 본지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