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이정환_ 세상을 떠나도 오래 남는...(발췌)/ 붉은 피에타 : 류미야

검지 정숙자 2020. 1. 17. 01:19

 

  <2019, 계간『다층』이 선정한 올해의 시조 best ten> 中

 

    붉은 피에타

 

    류미야

 

 

  사랑하는 모든 것은 서쪽으로 떠났다

  쓸리는 상처에 온통 마음이 기울듯

  하루가 멍드는 자리

  눈시울이 붉다

 

  왼편 심장 가까이 사연을 문지르고픈

  누군가의 사모思募로 생의 저녁은 온다

  서녘에 사무치는 건

  어린 양이 되는 일

 

  상처를 빨아주던 네 살 적 어머니가

  따뜻한 붉은 혀로 시간을 핥으신다

  무릎을 내어주시는 나의 서쪽

  어머니

       -전문, 『시와소금』(2019, 가을)

 

 

  ▶ 세상을 떠나도 오래 남는 것에 대한 미학적 천착(발췌)_ 이정환/ 시인

  류미야의 「붉은 피에타」는 의미심장하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무릎에 안고 슬퍼하는 광경을 표현한 작품이다. 작품 속에 "서쪽, 생의 저녁, 서녘"이라는 이미지가 전편을 관통하고 있다. 그래서 "사랑하는 모든 것은 서쪽으로 떠났다"라는 진술이 미묘한 파장을 일으킨다. 적잖은 울림이다. "쓸리는 상처에 온통 마음이 기울 듯/ 하루가 멍드는 자리/ 눈시울이 붉다"에서 보듯 "쓸리는 상처, 하루가 멍드는 자리"로 말미암아 "눈시울"이 붉은 것이다. 이어서 "왼편 심장 가까이 사연을 문지르고픈"이라는 시적 언행도 예사롭지가 않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사모思募로 생의 저녁"은 와서 "서녘에 사무치는 건/ 어린 양이 되는 일"이라고 단언한다. 이 대목에서 왜 제목이 '붉은 피에타'인지 알게 된다. '예수'는 '어린 양'이다. 시의 화자도 '어머니' 앞에서는 '어린 양'이다. "상처를 빨아주던 네 살 적 어머니가/ 따뜻한 붉은 혀로 시간을 핥으"시면서 "무릎을 내어주시"는데 그 어머니는 "나의 서쪽/ 어머니"이다. 서쪽이나 서녘은 해가 지는 쪽이다. 종언의 이미지다. 어떤 존재의 끝을 떠올리게 한다. 「붉은 피에타」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 화자와 그 어머니가 혼융을 이루는 중첩된 직조를 통해 작품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의미심장하다.(P. 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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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층』 2019-겨울호 <기획특집_2019 올해의 좋은 시조/ 총평>에서

  * 류미야/ 2015년『유심』으로 등단, 시집『눈먼 말의 해변』

  * 이정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