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종일/ 권민경

검지 정숙자 2024. 9. 23. 00:30

 

    종일

 

    권민경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에 대해

  생각하다 멈췄다

 

  너는 지물포 집 사내아이

  2학년 4반

  맨 앞에 앉아 있고

  피부가 검다

 

  너를 더듬고

  빚어보다

  멈췄다

 

  멈출 수밖에 없는

  날씨들이 흘러간다 흘러

 

  둑을 터뜨리고 마을을 집어삼킨다

  똥물에서 헤엄쳐 피난 가거나

  옥상에서 수건을 흔들 때

  우리는 수재민이라 불린다

 

  그거 어쩐지 사람 이름 같아

  킬킬거리다 하늘이 밝아온다

  뉴스 속보는 흘러가는데

 

  영원히 아홉 살에 멈춰 있는

 

  너의 죽음을 검색하면

  고양군이 나온다

  고양군은 고양군으로 멈춰져 있다

  고양시가 나타나도 소용없는 일

 

  야산은 어느 산의 이름일까

  동명이인은 왜 이렇게 많을까

  수재민의 아이들도  수재민

  아이들이 구호품으로 받은 학용품을 품에 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간다

 

  거기 종일이가 없다

 

  나는 없는 종일을 영원히 있게 하려

  시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내 어리석지만

  멈추지 못했다

   -전문(p. 162-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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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8월(416)호 <커버스토리/ 시인이 독자들에게 읽어주는 시 3편> 에서

* 권민경/  200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베개는 얼마나 많은 꿈을 견뎌냈나요』『꿈을 꾸지 않기로 했고 그렇게 되었다』『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