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혼밥 소송/ 황상순

검지 정숙자 2024. 2. 4. 14:11

 

    혼밥 소송

 

     황상순

 

 

  모름지기 밥은

  봄안개 피어오르는 호수를 건너듯

  주걱으로 노를 저으며 훗훗이 퍼야 한다

  따뜻한 솥밥 한 그릇이면

  어두웠던 몸이 환하게 백열전구를 켜는데

  전자레인지를 열고 햇반을 꺼내다가

  누룽지도 눋지 않는

  쓸데없이 그냥 뜨겁기만 한 밥

  앗, 뜨거워라

  방바닥에 통째로 엎지르고

  저것도 나와 마주할 생각이 없구나

  손길 마다하는 야박한 뜨거움에

  흩어진 밥알 주워 담다가

  목구녕이 어찌하여 포도청인가, 억울한 심사에

  골목길 지나는 개라도 붙잡아 앉혀넣고

  송사를 벌려볼 작심을 해보는 것이다

      -전문(P.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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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터 동인 제8집 『시 터』 2023. 11. 30.  <지혜> 펴냄

  * 황상순/ 1999년『시문학』으로 등단, 시집『어름치 사랑』『사과벌레의 여행』『농담』『오래된 약속』『비둘기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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