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골반뼈 피리*/ 최도선

검지 정숙자 2024. 1. 31. 02:26

 

    골반뼈 피리*

 

     최도선

 

 

  여체女體를 제단 위에 올리고

  눈물과 웃음을 섞어 제를 올린다

  그 몸에서 골반뼈를 뽑는다

 

     긴 머리 휘날리며 어린 말 등에 올라타고

  지평선 저 아래까지 유성을 쫓아다녔지요

  祭物로 태어난 줄은 몰랐어요

  내 몸의 청아한 소리

  바람이 원한대요

  그 소리가 비를 불러온다네요

  그렇다면 이 몸 가볍게 드리지요

  아주 오래 저승에 잠들어 있더라도

  내 본향 잊지 않으며

  초원을 향해 아름다운 소리 뿜어 드릴게요    

 

  너에게서 나는 맑은 소리

  골반에서 솟아 나온 대찬 소리, 액막이 소리

  

  모래벌판을 향해 물결치듯 아득히 가는 저 소리

  쇠이 씽 쇠잉 쐬잉

  너의 흐느낌 시리게 푸르다

 

  나는 초원에서 그 바람을 배웠다

    -전문(p. 44-45)

 

   * 몽골 역사박물관 전시실에 있는 피리로 처녀를 신께 제물로 바치고 그 골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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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터 동인 제8집 『시 터』 2023. 11. 30.  <지혜> 펴냄

  * 최도선/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1993년 『현대시학』 소시집 발표 후 자유시 활동, 시집『물까치 둥지』『나비는 비에 젖지 않는다』『겨울 기억』『서른아홉 나연 씨』『그 남자의 손』, 비평집『숨김과 관능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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