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수묵담채
한이나
옥천은 교대 갓 졸업한 나의 첫 부임지다
버스에 이불 보따리 싣고
구불구불 끝없이 아득했던 미류나무 신작로 길이다
총각 선생 둘 리어카 끌고
내 짐보따리 받으러 마중 나왔다
옥천은 군대 간 남자 친구 불쑥 찾아온,
소문이 무서워 벌벌 떨며 그 길로 냉정히 되돌려 보낸 깡시골
더러 십 리 간격 학교의 친구 선생 넷 모여
기타 치며 포크 송 불렀다
옥천의 저녁답은 저수지 수초 위로 물고기 허옇게 튀어 올랐다
언덕 위 학교 조금은 쓸쓸했을 스무 살 애린의 발자국들
무수히 점묘화로 찍혔다
옥천 옥천, 부르면 맑은 물소리 나의 시절
수묵담채가 향기로 빛깔로 뒤따라왔다
금시라도 적막을 헤치고 맨발로 달려 나가고 싶은,
어제 그린 그림이 오래된 그리움으로 남았다
-전문(p. 5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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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터 동인 제8집 『시 터』 2023. 11. 30. <지혜> 펴냄
* 한이나/ 1994년『현대시학』에 시 발표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물빛 식탁』『플로리안 카페에서 쓴 편지』『유리 자화상』『첩첩단풍 속』『능엄경 밖으로 사흘 가출』『귀여리 시집』『가끔은 조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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