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반뼈 피리*
최도선
여체女體를 제단 위에 올리고
눈물과 웃음을 섞어 제를 올린다
그 몸에서 골반뼈를 뽑는다
긴 머리 휘날리며 어린 말 등에 올라타고
지평선 저 아래까지 유성을 쫓아다녔지요
祭物로 태어난 줄은 몰랐어요
내 몸의 청아한 소리
바람이 원한대요
그 소리가 비를 불러온다네요
그렇다면 이 몸 가볍게 드리지요
아주 오래 저승에 잠들어 있더라도
내 본향 잊지 않으며
초원을 향해 아름다운 소리 뿜어 드릴게요
너에게서 나는 맑은 소리
골반에서 솟아 나온 대찬 소리, 액막이 소리
모래벌판을 향해 물결치듯 아득히 가는 저 소리
쇠이 씽 쇠잉 쐬잉
너의 흐느낌 시리게 푸르다
나는 초원에서 그 바람을 배웠다
-전문(p. 44-45)
* 몽골 역사박물관 전시실에 있는 피리로 처녀를 신께 제물로 바치고 그 골반으로 만들었다고 한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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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터 동인 제8집 『시 터』 2023. 11. 30. <지혜> 펴냄
* 최도선/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1993년 『현대시학』 소시집 발표 후 자유시 활동, 시집『물까치 둥지』『나비는 비에 젖지 않는다』『겨울 기억』『서른아홉 나연 씨』『그 남자의 손』, 비평집『숨김과 관능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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