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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임자들/ 김종상

본디 임자들      김종상    악어가 지갑을 가져갔다  토끼가 털모자를 가져갔다  여우가 목도리를 가져갔다  본디는 자기들 것이라 했다   황소가 구두를 벗겨 갔다  밍크가 외투를 벗겨 갔다  양들이 양복을 벗겨 갔다  모두 자기들이 임자라 했다   다 주고 마지막 남은 것은  발가숭이 알몸뚱이뿐이었다  "이것은 내가 먹여 키웠다."  흙이 통째로 가져가 버렸다.     -전문(p. 38)  ----------------------* 『월간문학』 2024-5월(663)호 에서* 김종상> 1935년 경북 안동군 서후면 대두서에서 나고 풍산면 죽전동에서 자람, 『새교실』문예작품 현상공모에 소년소설 「부처손」입상, 196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산 위에서 보면」당선, 동시집『흙손엄마』 『세계의 ..

동시 2024.06.21

생각하는 콩/ 김종상

생각하는 콩      김종상    콩도 생각이 있어  도리깨로 두드리니  아프다며 콩 콩 콩!  사방으로 달아난다   콩도 느낌이 있어  솥에 넣고 볶으니  뜨겁다며 콩 콩 콩!  밖으로 튀어나간다.     -전문(p. 36)   ---------------------- * 『월간문학』 2024-5월(663)호 에서 * 김종상> 1935년 경북 안동군 서후면 대두서에서 나고 풍산면 죽전동에서 자람, 『새교실』문예작품 현상공모에 소년소설 「부처손」입상, 196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산 위에서 보면」당선, 동시집『흙손엄마』 『세계의 아이들』 『꽃들의 가족사진』등 51권, 동화집 『아기사슴』『우주전쟁』『눈 굴리는 자동차』등 50권

동시 2024.06.21

교육 글쓰기가 글쓰기 교육이 되었다/ 김종상(아동문학가)

교육 글쓰기가 글쓰기 교육이 되었다      김종상/ 아동문학가    나는 1955년에 교사가 되었다. 6 · 25가 할퀴고 2년이 채 안 된 때라 초근목피로도 연명이 어렵던 시기였다. 학교에는 맨발에 점심을 못 싸오는 아이들도 많았다. 나는 학교 숙직실 옆에 가마솥을 걸고 미국에서 보내주는 옥수수 가루와 전지분유로 죽을 끓여 굶주린 아이들을 먹이는 일을 했다.  이러니 고학년에도 문맹자가 있었다. 그렇다고 ㄱ, ㄴ, ㄷ···에 ㅏ, ㅑ, ㅓ···를 가르칠 수는 없어, 아이들이 늘 보아온 일을 짧은 글로 써주고 외워서 글자를 익히도록 했다. '감잎이 빨개지면 감도 빨갛게 익는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듯이 쓴 글을 외우게 해서 글자를 익힌 뒤에 글을 쓰였더니, 아래와 같이 쓰기도 했다. '파랗던 풋감도 홍..

동시 2024.06.21

소설 창작자의 꿈(부분)/ 김영두(소설가)

中     소설 창작자의 꿈(부분)     김영두/ 소설가,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회장    결론적으로 소설은 단순한 거짓말이나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가의 상상력과 창조력이 꽃피운 문화예술의 중요한 형태이다. 독자는 소설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다양한 인간 경험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사회적 문제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소설가는 스스로 자신의 창작품에 진정한 값어치를 부여하고, 자신의 창작품이 인류의 미래에 미칠 문화적 예술적 가능성에 기대를 걸며, 꾸준히 정진해야 한다. (p.   23-24)              *  이 시대에, 소설가를 지향하는 문학청년들이 소설창작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나아가서 대박을 터뜨리는 야무진 꿈을 꿀까. 슬프지만,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

권두언 2024.06.21

빈손의 바통 외 1편/ 박은숙

빈손의 바통 외 1편      박은숙    몇십 바퀴의 트랙을  전력을 다해 돈 것 같은데  내 손엔 그 흔한, 건네받은 바통 하나  들려져 있지 않다  빈손을 이어벋으며 여기까지 달렸거나  바람이나 햇살 같은 무형을 쥐고  달렸다는 뜻이겠지  제각각 바통을 든 사람들과  트랙을 한참 돌다 보면  그들은 하나씩 둘씩 바람처럼 나를 제치고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가끔은 이런저런 바통을 건네다 떨어뜨려서  실격되는 사람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제 것이 아닌 것 받으려 했거나  너무 꽉 쥐려고 했을 것이다  바통을 놓치면 넘겨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둘 다 실격이다  그러니 어쩌면 빈손을 넘겨주고  그 빈손을 받고 또 열심이 뛰고  그런 일이 훨씬 속 편한 일인지도 모른다  받은 것 없으니 놓칠 일도 ..

우는 아이/ 박은숙

우는 아이      박은숙    아이가 울자, 사람들이 모여든다  우는 아이는 중심이 되고  황급한 곳이 된다   중심이 된다는 것은  단맛을 찾는 일이었을까  세상의 단맛들이 쓴맛으로 돌아서는 일을 겪는 동안  아이는 중심을 헐어낸 존재가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악스럽게 울어댄 일들이  다름 아닌 중심을 찾으려는 일이었다는 것을  다 자란 중심이 되어서야 알게 된다   더 이상 주변을 불러 모을  울음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스스로 외곽이 된다   달래는 일도, 울음도 남아 있지 않을 때  그때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중심이라는 어휘는 상대적인 공간으로서의 주변부를 상정한다. 사회적 위치, 삶의 방식, 향유의 대상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을 포함하..

아버지의 임종/ 양평용

아버지의 임종      양평용    날이 어두워집니다.  희미하던 불빛마저 꺼져 가고  초침 소리가 크게 들립니다.  "아버지, 잠시 후 숨쉬기 곤란해지면 얼른 숨을 멈추고  먼저 가신 어머니 아버지를 불러야 해."  차가워진 손이 꼼지락꼼지락 내 손을 잡는다.  "아버지, 부탁이 있습니다."  "머지않은 날, 지금 아버지처럼 숨쉬기 곤란해져 숨이 멈출 때 나도 아버지를 부를 겁니다. 그때 늦지 말고 꼭 마중 나와야 해."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때야 눈가에 미소가 돌고 꽉 잡은 손을 스르르 놓는다.  '신이 어디 있느냐?' 하던 아버지도  때가 되니 영접靈接하고 영면永眠한다.  '초로인생草露人生이니 하루를 백 년처럼 살아라' 하며  한시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하였건만  어느새 90으로 시간은 멈..

폴란드 한국문학의 대모, 할리나 오가렉 교수/ 이혜선

폴란드 한국문학의 대모, 할리나 오가렉 교수         이혜선    * 나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까지 '생명의 전화' 자원 상담원으로 상담활동을 한 적이 있다.  생명의 전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전화상담으로는 처음으로 사단법인으로 설립되었던 때였다. 나는 2기 상담원으로 여러 분야의 교육을 받고 상담원 자격을 얻어, 주로 저녁 8시간대 철야상담을 맡아서 상담하면서 소그룹 모임으로 열심히 공부도 하였다. (p. 146)   * '' '한국어와 결혼한 여인'으로 불린 할리나 오가렉 교수는 그 후에 8년간의 작업 끝에 한국문학사를 탈고해 제1권 『한국고전문학』을 출간하고 2004년 작고했다. 제자 야니샤크 교수에 의해 1년 후 유고집으로 작업의 완결판인 『한국현대문학』이 출간되었다. 202쪽..

한 줄 노트 2024.06.19

이혜선 수필집 『아버지의 교육법』, 「아이의 선생님」

아이의 선생님      이혜선    갑자기 쏟아지는 빗소리에 놀라 우산을 들고 나섰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된 것이다. 집에 있는 날만이라도 좋은 엄마  사실은 평균치도 안 되는 기본이지만  가 되기 위하여 읽던 책을 덮어놓고 상큼한 비의 감촉을 느끼며 빗속을 나섰다.  모처럼 마중나온 엄마의 손을 잡고 눈을 빛내는 아이와 함께 교문을 나서서 건널목을 지나오다가 가슴이 뭉클하여 멈춰섰다. 건널목을 막 건너서 아파트로 가는 길 앞에 2학년쯤 되는 아이들이 줄지어 서있고 선생님이 그 앞에 서서 한 명씩 잘 가라고 머리를 쓰다듬어 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자기 차례가 더디 와서 불만이라는 듯이 다투어 선생님 손아래에 머리통을 디밀어 넣는 것이었다.  그 눈빛이 ..

에세이 한 편 2024.06.19

이혜선 수필집 『아버지의 교육법』, 「아버지의 교육법」

아버지의 교육법     이혜선     교육열 높고 진보적인 시골 선비  아버지는 종손으로 태어나서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의 무거운 책무를 이행하기 위해 평생동안 선산을 떠나지 못하고, 청운의 뜻을 펴지 못하신 채 고향이라는 늪 속에 엎드려 있어야 하는 이무기이셨다.  함안 군청으로, 마산 시청으로 공무원이 되어 떠나 있던 것도 잠깐이고, 경상남도 함안군 대산면 옥열리 무근절의 대대로 내려오는 선영과 집이 안 잊혀 그예 돌아와 파묻히고 마셨다.  통 말씀을 안 하셨으니, 일제 식민지 아래서의 공무원 생활이, 굽힐 줄 모르고 아부를 모르는 성격에 맞지 않은 것도 한 이유였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서당에서 익힌 한학漢學과 신학문이 조화되어, 고루한 유교적 가풍 속에서도 젊은이들의 진보적인 사고를 이해하려고 ..

에세이 한 편 2024.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