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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아침 기도/ 원탁희

새해 아침 기도      원탁희    새 날이 밝았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은 잊게 하시고  겸손과 감사로 시작하는  희망찬 새 날이 되게 하소서   얼굴 붉히며  다투지 않고 큰소리 내지 않는  사랑으로 포용하는  희망찬 새 날이 되게 하소서   바쁜 걸음으로 뛰지 않게 하시고  뚜벅뚜벅 묵묵히 걸어가면서    서로 베푸는 삶으로 살게 하시어  소망하는 꿈들을 이루게 하는  희망찬 새 날이 되게 하소서   어리석은 욕심에 물들지 않고  참다운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하시어  푸르고 푸른 복된 날이 계속되는  건강하고 희망찬  갑진년 새 날 새해가 되게 하소서    -전문-    * (2021년 ⟪경기신문⟫, 월간 『경기피플』 1월호에 발표한 작품을 수정 다시 실어봅니다.)    -----------..

권두언 2024.06.15

가정법률상담소를 창설한 이태영 변호사/ 이혜선

우리나라에 가정법률상담소를 창설한 이태영 변호사       이혜선    ♣ 저 혼자 태어나 저 혼자 자란 것처럼 그 사랑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우리들이다. 오늘은 열 일 다 제쳐두고 어머니께 달려가 주름진 손이라도 잡아드려야겠다. (p. 71)   ♣ 우리나라에 가정법률상담소를 창설한 이태영 변호사는, 예전의 부부는 남편이라는 커다란 원 하나가 있고 그 옆에 아내라는 작은 원 하나가 붙어서 따라가는 형태였다면, 오늘날의 부부는 크기가 같은 두 개의 원이 서로 합하여 더 큰 하나의 원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p. 97)   ♣ 우리들 가까이에도 많은 장애인이 하루하루 힘겨운 삶의 시간을 견디고 있으며, 교황님처럼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많은 분들이 그들의 곁에서 헌신적으로 보살펴주고 있다...

한 줄 노트 2024.06.15

그래도 봄이었다 외 1편/ 김유섭

그래도 봄이었다 외 1편      김유섭    화장장은 새벽부터 붐볐다.  디편 산자락에 진달래가 피어 있었다.   화로에 불이 붙으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울었다.  죽은 사람은 불 속에 말없이 누워 있었다.   상조회 사람이 "어머니 불났습닏. 어서 나오세요." 라고  소리쳐야 한다고 했다.  나는 장밖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따라 소리치기 시작했다.  울음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시들해졌다.   사람이 타는 시간은 삼십 분에서 한 시간이라고 했다.  분쇄기 돌아가는 소리는 일 분이었다.   걸어온 발자국이라고 아니 어머니라고  뼛가루가 든 작은 나무상자를 끌어안고  우는 소리가 들렸다.   늦었다며 매장지로 가야 한다고  서두르는 몸짓들이 일렁거렸다.   진달래 구경가지고 어머니,  아침 햇살을 향해..

비보이/ 김유섭

비보이     김유섭    컵밥이 좋아,  자판기가 던져주는 하루가  가볍게 음미하는 삶에 오우, 소리 질러   버튼을 누르면 위이잉 쏟아져 나오는  바코드 찍혀 있는 하늘 바다 들판  뜨거운 물 부어서 2분 30초 기다렸다가 먹는   어디까지 날아오를까.  동전 하나로 되살아나는 웃음이 싫어  날개는 잘린 것인지, 삭제되었나?   대낮에도 즉석 별들이  은하수 유성으로 떠다니는  두 평 반 옥탑방에서 퍼덕거리다가   뒹굴뒹굴 반지하에서 질척거려보다가  뻥 내쫓겨, 시멘트 바닥을 굴러  비보이 춤을 춘다.     -전문(p. 40-41)   시인의 말> 전문: 8년 동안 쌓인 쓰레기 더미에서/ 50편을 건져 올려 책으로 묶는다.// 세상은 겹겹의 빙벽에 막힌 겨울이다./ 겨울 아니었던 적 있나.// 강철..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 / 세종대왕 가라사대 : 백창희

세종대왕 가라사대      백창희    타임머신 타고 21세기 우리 땅에  행차하신 세종대왕님   백성을 가르치려 만든 바른 소리  잘 쓰고 있나 궁금해  몰래 거리로 나오셨다   거친 말투와 욕설에  얼굴 찌푸리시다  오천만 백성들 손가락에 피어나는  핸드폰 문자꽃 보고  흐뭇한 미소 지으신다   "아래아(ᄋᆞ)가 없어졌다 하여 슬퍼하였거늘  IT 강국 자랑하며 여러 문자를 만들고 있구나!"   전 세계 문자 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 땄다는 소식 듣고  흡족한 미소로 긴 수염 쓸어내리신다     -전문-  과학적이고 아름다운 한글이 IT 강국으로> 전문: 1446년에 한글을 창제하고 반포하면서 그 창제 원리와 사용법을 설명한 책 『훈민정음』에 실린 "세종 어제서문御製序文"에는, 쉬운 글자를 만들어 백..

이혜선의 『시가 있는 저녁』 「 아버지」

아버지     이혜선    아버지  어젯밤 당신 꿈을 꾸었습니다  언제나처럼 한쪽 어깨가 약간 올라간  지게를 많이 져서 구부정한 등을 기울이고  물끄러미, 할 말 있는 듯 없는 듯 제 얼굴을  건너다보시는 그 눈길 앞에서 저는 그만 목이 메었습니다   옹이 박힌 그 손에 곡괭이를 잡으시고  파고 또 파도 깊이 모를 허방 같은 삶의  밭이랑을 허비시며  우리 오남매 넉넉히 품어 안아 키워 주신 아버지   이제 홀로 고향집에 남아서  날갯짓 배워 다 날아가 버린 빈 둥지 지키시며  '그래, 바쁘지?  내 다아 안다'  보고 싶어도 안으로만 삼키고 먼산바라기 되시는 당신은  세상살이 상처 입은 마음 기대어 울고 싶은  고향집 울타리  떙볕도 천둥도 막아주는 마을 앞 동구나무   아버지  이제 저희가 그 둥구..

이야기- 원형/ 유희경

이야기     원형     유희경    할머니는 타래에서 실을 뽑으며 노래를 부르곤 하셨다. 나는 그 노래를 기억해본다. 그러면 할머니는 지긋이 바라보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실. 슬슬 풀려가는 실. 친친 감기는 실. 무언가 허술해졌고 그만큼 불룩해지고 할머니의 노래는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그저 옮겨갈 뿐. 그 얇고 가는 사이. 아가.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주위를 둘러본다. 창밖에는 늙은 나무가 있고 그것은 아슬하게 서 있다. 가을이 되면 저 위태로운 각도의 잎들을 모두 벗고 중심의 방향을 드러낼 것이다. 그때쯤. 그렇구나.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다. 그런 노래였나. 그랬구나. 머리를 만져주는.     -전문-   ▶갱신과 반복, ..

송현지_쌓이(지 않)는 반복들(발췌)/ 리을 : 구현우

리을     구현우    벽화마을을 일인一人이 배회하는데  무슨 사연은 없다   영혼을 잃은 월요일도  친밀했던 이의 기일도  아니고   집에 돌아갈 기분이 아닐 따름이다   일인一人은 독백한다  영원히 죽지 않는 잉어가 그려진 계단에서  내려가야 한다······     오선지 같은 전선에 찢어지는 새털구름  새는 보이지 않고 새소리는 들린다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일인一人은   사람다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람을 본 적은 있다  사람 같지 않다고 느꼈을 뿐   담의 끝에서 잘린 그림이 다음 담의 처음과 연결되어 있다   일인一人은 독백한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는 아니었는데    벽화마을은 다방면으로 열려 있고 그러므로 출구는 따로 없다  지금이 아니야 지금은 아니야  일인一人은    자신만의 ..

송현지_쌓이(지 않)는 반복들(발췌)/ 공원의 좋은 풍경 : 정재율

공원의 좋은 풍경      정재율    새가 날아간다   사람들은 종종 연못에 동전을 넣고 기도를 드린다  아주 짧게   중얼거리는 사람들 옆으로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이가 있고 두리번거리며 무언가를 찾는 어른도 있다   이상하다 분명 이곳에 있었는데   그런 말을 하며 바닥에 엎드려 있는 사람  그 옆으로 자전거 몇 대가 지나가고   안전모를 착용했을 때 사망할 확률은 3배나 감소된다고 한다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새는 연간 팔백 마리라고  그것을 글래스 킬이라고 부른다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면 잠시 새롭게 태어나는 것 같다   가만히  손바닥 위로 올라온 빛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쥐었다가  다시 펴보았다가   반복하는 동안   이곳에선 함부로 모이를 주면 안 된다고  누군가가 공원의 좋은 풍..

송현지_쌓이(지 않)는 반복들(발췌)/ 내 마음의 돌 : 김참

내 마음의 돌      김참    토요일 아침, 강변 돌밭에서 돌 하나 들고 보다가 내려놓는다. 다시 하나 들었다가 내려놓는다. 강변엔 돌이 많다. 하얀 선 들어간 돌을 들었다가 내려놓고 구멍 숭숭 뚫린 돌도 들었다 내려놓는다. 흰 물새 한 마리 고요히 떠 있는 푸른 강과 돌 찾는 내가 돌아다니는 뜨거운 강변 돌밭. 서로 다른 세계 같다. 강변에 돌이 많지만 내가 찾는 돌은 보이지 않는다. 9월의 태양은 여전히 뜨거워서 돌밭도 아직 뜨겁다.   섬을 한 바퀴 돌았는데 돌밭이 보이지 않는다. 섬을 빠져나오는데 절벽 아래 보이는 돌밭. 물놀이하는 아이들과 낚시꾼 두엇 보이지만 내려가는 길은 보이지 않는다. 잡목을 헤치며 비탈을 따라 조심조심 내려가니 마침내 나타나는 넓은 돌밭. 크고 작은 돌들을 살피며 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