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는 아이
박은숙
아이가 울자, 사람들이 모여든다
우는 아이는 중심이 되고
황급한 곳이 된다
중심이 된다는 것은
단맛을 찾는 일이었을까
세상의 단맛들이 쓴맛으로 돌아서는 일을 겪는 동안
아이는 중심을 헐어낸 존재가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악스럽게 울어댄 일들이
다름 아닌 중심을 찾으려는 일이었다는 것을
다 자란 중심이 되어서야 알게 된다
더 이상 주변을 불러 모을
울음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스스로 외곽이 된다
달래는 일도, 울음도 남아 있지 않을 때
그때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중심이라는 어휘는 상대적인 공간으로서의 주변부를 상정한다. 사회적 위치, 삶의 방식, 향유의 대상 등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때로는 중심을 향하느라 주변부를 외면하고 하찮게 여기는 오류를 저지른다. 이러한 중심을 향한 자발적 충성은 주변의 자기 소멸은 물론 중심의 권력을 지속시키고 정당화하는데 그것은 일상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우리가 오랜 시간 동안 젊어지고자 노력하고 자기 계발의 신화들을 모방하며 적절하게 웃고 우는 방법과 침묵마저도 배우려고 애쓰는 것. 그뿐일까? 타인보다 더 낮은 가치로 환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완벽하게 자유롭지도 마음껏 행복하지도 못한 일상을 당연하게 여긴다. 누구나 노력하면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을 착취하며 불안, 소외와 함께 피로라는 심각한 증세에 시달리기도 한다. 어쩌면 중심이 침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자신을 지키는 충분한 만족을 가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자각은 중심을 헐어내고 또 헐어내서 "더 이상 주변을 불러 모을/ 울음이 남아있지 않을 때" 비로소 "스스로 외곽이" 되는 자존감을 만들어 낸다. 중심의 환영 속에서 하루하루 자신을 버리면서 그것의 부속품으로 열심히 기능하는 것을 그만둘 때, 아직은 소진되지 않고 남아 있는 영혼을 보유하고 살려낼 수 있다. 이를테면 "달래는 일도, 울음도 남아 있지 않을 때/ 그때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p. 시 13/ 론 117-118) <장예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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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나는 누구의 비유였을까』에서/ 2024. 5. 30. <문학의전당> 펴냄
* 박은숙/ 충북 중원 출생, 2021년 ⟪농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수필집『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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