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글쓰기가 글쓰기 교육이 되었다
김종상/ 아동문학가
나는 1955년에 교사가 되었다. 6 · 25가 할퀴고 2년이 채 안 된 때라 초근목피로도 연명이 어렵던 시기였다. 학교에는 맨발에 점심을 못 싸오는 아이들도 많았다. 나는 학교 숙직실 옆에 가마솥을 걸고 미국에서 보내주는 옥수수 가루와 전지분유로 죽을 끓여 굶주린 아이들을 먹이는 일을 했다.
이러니 고학년에도 문맹자가 있었다. 그렇다고 ㄱ, ㄴ, ㄷ···에 ㅏ, ㅑ, ㅓ···를 가르칠 수는 없어, 아이들이 늘 보아온 일을 짧은 글로 써주고 외워서 글자를 익히도록 했다. '감잎이 빨개지면 감도 빨갛게 익는다.' 이렇게 그림을 그리듯이 쓴 글을 외우게 해서 글자를 익힌 뒤에 글을 쓰였더니, 아래와 같이 쓰기도 했다. '파랗던 풋감도 홍시로 익듯/ 하늘도 빨갛게 물이 드네.' 이것이 아이들 동시 쓰기 교육의 시작이었다.
나도 '감'이 빨갛게 익을 때면 '감잎'도 빨갛게 단풍이 드는 모습을 '단풍'이란 제목으로 풍경을 스케치하듯이 써서 읽어 주었다.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닮아서
잎사귀도 빨갛게 물이 들었네
감나무에 떨어진 아침이슬은
감잎에 담겨서 빨강 물방울
샛노란 은행알이 달린 가지에
잎사귀도 노랗게 잘도 익었네
은행나무 밑으로 흐르는 냇물
은행잎이 잠겨서 노랑 시냇물
-「단풍」, 전문
나는 이런 방법으로 쓴 동시를 사생시寫生詩라고 했다. 그림을 그리듯이 쓴 동시라는 뜻이다. 이 시는 1974년 10월 『가톨릭소년』에 발표한 후, 작곡가 김은석, 이경숙 등이 작곡을 했고, 청양 고운식물원에 시비로도 세워졌다. 이렇게 아이들 문맹퇴치를 하려다가 동시 쓰기 교육을 해서 상주를 <동시의 마을>로 만들었고, 나도 평생 동시만 쓰게 되었다. (p. 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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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문학』 2024-5월(663)호 <이 시대 창작의 산실> 에서
* 김종상> 1935년 경북 안동군 서후면 대두서에서 나고 풍산면 죽전동에서 자람, 『새교실』문예작품 현상공모에 소년소설 「부처손」입상, 196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동시「산 위에서 보면」당선, 동시집『흙손엄마』 『세계의 아이들』 『꽃들의 가족사진』등 51권, 동화집 『아기사슴』『우주전쟁』『눈 굴리는 자동차』등 5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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