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위치▼
박세미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움직입니까
태풍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휘돕니까
숲속 오후 기분 좋은 토끼처럼 뛰어다닙니까
아니면 언제나 눈꺼풀처럼 박입니까
당신이 내게 다다르는 경로를 짐작하지 못하므로
이불을 펄럭이고
형광등을 켜고
꾸벅꾸벅 좁니다
손에 든 펜이
당신의 좌표를 점치는 동안
오늘은 먼지를 잔뜩 마셨습니다
먼지의 성분을 헤아려보면서···
당신이 포함되었다는
폐에 파고든 당신을 영원히 배출할 수 없다는
확신 속에서···
깨끗하게 씻긴 폐를 양 날개 삼아 날아오르는
꿈을 꿉니다
돌연
날개가 거침없이 부풀어 오를 떄
나는 당신과 동시에
터지길 바랍니다
-전문-
▶범선이 되고 싶은 시(발췌) _김영임/ 문학평론가
"비극위 위치"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비극"은 시의 순간으로 읽어도 좋을 듯하다. "당신이 내게 다다르는 경로를 짐작하지 못하므로. 이불을 펄럭이고/ 형광등을 켜고/ 노트를 펴고" "손에 든 펜이/ 당신의 좌표를 점치는" 순간을 기다리는 시적 화자에게 "당신"은 아무래도 시의 뮤즈로 읽힌다. 문맥상으로 "당신"이 "비극"을 의미한다면 시의 뮤즈는 비극일 수밖에 없겠다. 시를 쓰는 행위가 형벌과도 같다고 이야기한 허연 시인의 말을 빌린다면 "폐에 파고든 당신을 영원히 배출할 수 없다는 확신"이야말로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는 슬픈 비극이 아니겠는가, 또는 "날개가 거침없이 부풀어 오를 때/ 나는 당신과 동시에 터지길" 바라는 것 역시 뮤즈를 잃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시인에게 비극일 수밖에 없으리라. (p. 시 158-159/ 론 167)
※ 제목 끝에 [▼] 표시가 된 작품은 시인들이 직접 뽑은 1~2년 내의 근작대표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시 작품상 후보작으로 검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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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7월(415)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자선시/ 작품론> 에서
* 박세미/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내가 나일 확률』『오늘 사회 발코니』
* 김영임/ 문학평론가, 2016년 『문학과사회』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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