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의자를 빌려주는/ 길상호

검지 정숙자 2024. 8. 22. 01:20

 

    의자를 빌려주는

 

     길상호

 

 

  발판이 필요해

  신과 조금 더 가까이 있고 싶어

 

  대문마다 대나무를 세워놓는 무당들

  가난의 중심에 앉아 점괘를 보지

 

  당신의 등을 내주면

  한 발 높이 갈 수 있는데

 

  증명사진을 찍으려 앉았는데

  찰깍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

 

  바닥을 보는 일은 자신 없어

  뭐라도 밟을 게 필요해

 

  담을 넘어야 하는데

  앞이 다 무너져 버렸어

 

  페루에 가면

  일인용 의자를 5000원에 빌릴 수 있다는데

 

  태양과의 거리를 줄일 수 있다는데

  낮이 없는 계층으로 태어났어

 

  가계도를 유지하기 위해

  더 견고한 거짓말을 하면

 

  저 높은 곳에는 늘 꽃이 있었어

     -전문(p. 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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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경계』 2024-여름(61) <신작시>에서

  * 길상호/ 충남 논산 출생,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시집『오늘의 이야기는 끝이 났어요 내일 이야기는 내일 하기로 해요』외, 산문집『겨울 가고 나면 고양이』외